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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에세이 아리스토파네스

이윤진이카루스 2010. 11. 6. 08:28

“소크라테스, 그자는 지식 사기꾼이야”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2
아리스토파네스 지음·천병희 옮김/숲·2만5000~2만8000원
한겨레 고명섭 기자 메일보내기
그리스 최고 정치풍자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 작품 11편 엮어
번뜩이는 야유와 외설의 성찬장

그리스 3대 비극작가(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전집을 옮긴 바 있는 그리스·라틴 고전 번역가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가 이번에는 그리스 희극의 대표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기원전 445?~385?·그림)의 희극 전집을 번역해 두 권으로 펴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모두 40여편의 작품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중 11편이 온전히 전한다. 이 번역 전집에 이 11편이 모두 담겼다.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그리스 ‘고희극’ 수백 편 가운데 현전하는 것은 아리스토파네스의 이 작품들뿐이다. 옮긴이는 “그의 생기발랄하고 재기 넘치는 작품을 읽어보면 아리스토파네스가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희극작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페리클레스가 아테네를 이끌던 민주주의 전성기에 태어나 펠로폰네소스 전쟁기(기원전 431~404)에 주로 활동했다. 그는 공동체의 전통적 가치관을 존중하고 유지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았던 듯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보수적 관점을 드러내는 장으로 삼아, 새로운 흐름이나 위험한 경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 당대의 유명 정치인이나 지식인을 표적으로 겨누어 실명으로 혹은 익명으로 가혹하게 풍자했다. <기사>라는 작품에서 페리클레스에 이어 아테네를 이끈 급진적 민중지도자 클레온을 형편없는 아첨꾼으로 묘사한 것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특히, 소크라테스를 일종의 ‘지식 사기꾼’으로 그린 <구름>이라는 작품은 직접적인 인신공격이다.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를 그른 것도 옳은 것으로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악질 소피스트로 묘사한다. 소피스트들을 논적으로 삼아 집요하게 비판했던 소크라테스의 처지에서 보면 무척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보수적인 눈에는 상대주의적 요설로 가치기준을 어지럽히는 소피스트나, 낡은 신념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모두 가차없이 비판해 아테네의 ‘등에’ 노릇을 하던 소크라테스나 똑같이 공동체의 안정을 흔드는 부류로 보였던 것이다. <구름>에서 놈팽이 아들 때문에 막대한 빚을 진 주인공 남자는 아들을 소크라테스에게 보내 교묘한 논리와 말솜씨를 배워오게 한다. 그리하여 채권자들을 따돌리고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두들겨 패고 나서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운 논리로 자신이 정당함을 입증하기에 이른다. 훗날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를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될 때, 거기에 동원된 구실을 아리스토파네스의 이 희극이 먼저 보여준 셈이다.

<구름>은 애초 기원전 423년에 써 그해 경연에 냈던 작품인데, 거기서 꼴찌(3등)를 한 바람에 몇 년 후 다시 고쳐 썼다. 지금 전해지는 것은 이 개작 판본이다. 희극 장르는 중간에 ‘파라바시스’(앞으로 나섬)라는 대목이 있는데, 배우들이 모두 퇴장한 상태에서 코로스(합창대)와 코로스장이 앞으로 나서서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다. <구름>에서 코로스장은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를 대신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실 여러분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관객이며, 여기 이 희극이야말로 내 희극들 중 가장 지혜로운 작품이라 믿었소. 그래서 내게 가장 많은 노고를 안겨주었던 이 희극을 맨 먼저 감상하도록 내놨으나, 부당하게도 하찮은 자들에게 져 물러났소.” 파라바시스에서는 통상 작품의 플롯과 무관한 주제로 관객과 이야기하는데, 이 작품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관객에게 ‘왜 내 작품을 안 뽑아 주었냐’고 서운한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리시스트라테>(기원전 411)는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중 그 내용이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일 것이다. ‘섹스파업’이라는 센세이셔널한 가상의 사건을 그렸기 때문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계속돼 도시가 피폐해지자 아테네의 여자들이 적국 스파르타의 여자들과 공모해, 남자들이 전쟁을 끝내는 그날까지 잠자리를 거부하기로 결의한다. 일종의 동맹파업인 셈인데, 여자들의 공동전선이 끝까지 유지돼 결국 남자들이 손을 들고 평화조약을 체결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은 해학·조소·야유·풍자의 성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특히 외설스런 표현이 거의 포르노그래피 수준에 육박한다. 파업 지도자 리시스트라테가 여자들을 앞에 놓고 “앞으로 우리는 남근을 삼가야 해요”라고 말하자, 여자들이 일제히 대든다. “난 못해요. 전쟁이야 계속되든 말든.” “불속에라도 뛰어들겠어요. 남근을 삼가느니 그편이 낫겠어요.”

그런 여자들을 달래 파업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2400년 전 아테네라는 고대도시의 일상생활, 아니 은밀한 사생활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생히 그려보게 해준다. “아모르고스산 속옷을 입되 아랫도리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삼각주의 털을 말끔히 뽑은 채 남편들 앞을 지나가면 남편들은 발기되어 하고 싶을 거예요. 그때 딱 잘라 거절하는 거예요. 그러면 남편들은 서둘러 휴전하게 될 거예요.” 바로 이 생동감 넘치는 묘사의 활력이 아리스토파네스를 최고의 희극작가로 만든 힘일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