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경북도지사에 도전하던 한 정치인이 구미시 명칭을 ‘박정희시’로 바꾸겠다고 호언했을 때도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박정희체육관’을 ‘구미시민체육관’으로 바꾸자는 필자의 공약이 그 정치인의 제안보다는 훨씬 더 지지를 받았다. 정작 구미를 ‘박정희시’라는 편견에 가두는 데 한몫한 것은 ‘남의 속도 모르면서’ 구미 시민을 싸잡아 비난했던 구미 바깥 여론이다. 안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힘만 빼놓았다.
몇 해째 박정희 기념사업 논란에 휩싸인 구미시는 내년 박 전 대통령 100주년 ‘탄신제’ 행사에 40억원을, 박 전 대통령을 다룬 뮤지컬에 28억원을 들이려고 한다. 구미와이엠시에이가 지난 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하다’는 답변이 76.8%였다. ‘탄신제’라는 명칭도 ‘적절하지 않다’가 59.3%였다. “박정희 기념사업에 맞서 싸우다가 시의원 재선 실패”라는 진단이 틀렸음을 어느 정도 입증하는 통계 수치다.
오히려 그 틀린 진단에서 박정희 기념사업이 폭주하는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저 말씀을 하신 분은 지역 주민이다. 정치 성향과 지지 정치인이 비교적 또렷하고, 박정희 기념사업에 반대하는 이분조차 이런 실정이면, 대다수 주민들이 어떤 여건에 놓여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박정희 기념사업은 ‘어느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주민과 지방정치의 괴리’가 극명하게 나타난 사례다.
구미는 평균연령이 34살로 젊은 편이고 외지 출신 인구가 압도적이다. 자연히 새누리당 지지율은 대구경북의 다른 지역에 비해 낮다. 뼛속까지 ‘박정희시’일 수가 없는 도시다. 다만, 구미에는 일자리를 구하다 구미공단을 찾은 청년이 많고, 여느 공단지역처럼 비정규직이나 교대근무자가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며, 울산 같은 다른 공단도시에 비해 정주의식이 상당히 낮고 공단이 도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상히 알지 못하고 정치사회적 의견을 조직적으로 표출하기 힘든 시민들이 다른 지역보다 많다.
결국 1차적인 관건은 주민들을 대의하는 정치인에게 달렸다. 구미시의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명 존재한다. 하나 이 당은 딱히 대안적인 활동을 벌이지도 않고, 박정희 기념사업에 저항하지도 않는다. 더민주의 한 시의원 후보는 2014년 지방선거 공보물에 박정희 사진을 큼지막이 싣기도 했다. 야당이 이러니 새누리당 내에서 전향적 자세를 가진 정치인도 좀처럼 발견할 수 없다. 그래도 아마, 새누리당이나 박정희 기념사업을 비판하는 시민 다수는 다음에도 더민주 후보에 투표할 것이다. 그들이 무슨 활동을 하는지 모르는 탓이다.
냉소나 한탄이 나온다면 이게 과연 구미만의 일인지, 자신이 사는 지역 사정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지자체나 지방의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인지하거나 관심이 있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지방선거에서 투표를 해놓고도 당선자와 낙선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시민들도 부지기수다. 박정희 기념사업을 비판한 사람들도 제 골목에 깔린 문제점 하나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풀뿌리운동과 정치참여에 들일 시간을 확보하기까지, 모두들 지난한 과정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무지몽매한 특정 지역 주민들이 문제’라고 단언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김수민 전 구미시의원·녹색당
김수민 전 구미시의원·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