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괘로 나타나는 신의 뜻이 주역의 원리” | |
주역, 인간의 법칙 이창일 지음/위즈덤하우스·2만원 카를 융 ‘동시성 원리’ 도입하고 ‘정약용 역학’ 복권해 버무려 낸 새로운 주역 해설서 겸 연구서 | |
고명섭 기자 | |
<주역, 인간의 법칙>은 주역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창일(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씨의 주역 해설서 겸 연구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주역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에 충실하게 답을 해줌과 동시에 주역이라는 동아시아 고전에 대한 야심만만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한다. 이 새로운 이해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지은이는 다산 정약용(1762~1836·사진)의 주역 해석을 되살려내 탐사하고, 분석심리학 창시자 카를 융(1875~1961)의 설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 결과 전통적인 주역 해석과는 사뭇 다른 주역 이해의 새로운 지평이 드러난다.
주역은 동아시아 고전 13경 중에서도 가장 난해하고 심오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지은이는 먼저 ‘도대체 주역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역>을 영어로 ‘변화의 서’(the Book of Changes)라고 번역하는데, 주역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낸 번역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음이 양으로 변하고 빛과 어둠이 교대하는 것, 그 영원한 변화를 포착해 설명하는 것이 주역이다. 주역의 해설서인 <계사전>에 “역,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易, 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역은 끝까지 가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지속한다)고 했는데, 이 문장이야말로 변화를 본질로 하는 역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구절이다. “인간들이 주역을 알게 된 이래로, 이것(변화)이야말로 주역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우아한 형이상학적 해석은 주역의 본디 뜻에서 좀 멀리 벗어난 과잉해석이라고 지은이는 본다. 지은이는 주역이 ‘점을 치는 책’이라는 관점을 논리 전개의 거점으로 삼는다. “신에게 어떤 사안에 대해 물으니 신이 답해주면 그 답이 괘의 상징에 서리고, 다시 그 상징을 문자로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형이정’이라는 건괘의 단사는 점을 친 결과를 써놓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원형이정은 원문에 즉해서 “크게 형통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이롭다”라는 뜻으로 읽는 게 자연스럽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특히 힘주어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다산 정약용의 주역 해석이다. 다산의 주역 해석은 정통 성리학의 주역 이해와 아주 다른 것이었는데, 그 파격성 때문이었는지 전혀 계승되지 않고 묻혀버렸다고 한다. 다산 역학은 정통 역학과 비교해 여러 가지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상제’라고 하는 초월적인 신적 존재를 상정한다는 점이다. 주자의 경우 ‘태극’을 만물의 기원에 놓고 있지만, 그 태극과 태극에서 파생돼 나온 만물 사이에 존재론적 위계가 없는 수평관계가 성립한다. 태극의 분화는 박테리아의 세포분열 같은 것이다. 반면에, 당시 서학의 영향을 받은 다산은 태극을 상제로 이해해 그 상제가 세상 만물을 창시했다고 보았다. 위계적 관점이다. 또 다산은 ‘역리사법’이라는 독창적인 네 가지 주역 해석 방법을 창안해 정통 역학을 새롭게 고쳐 썼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정통 역학과 다산 역학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삼고 서로의 장점을 결합해 주역을 해석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또 하나 역점을 두는 것이 ‘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주역은 형이상학이나 윤리학 텍스트이기 이전에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과학적 합리주의’로 보면 점이라는 것은 비합리적 미신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점이 단순한 미신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지은이가 끌어들이는 사람이 카를 융이다. 융은 50대에 주역을 알게 된 뒤 그 세계에 매료됐으며, 주역 점 치는 법을 잘 알고 있었고 64괘를 모두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융이 주역 점의 효능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 ‘동시성 원리’다. 원인이 결과를 낳는다는 인과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비인과적인 연결’을 가리키는 것이 동시성 원리다. 점을 쳐서 미래를 아는 것은 인과법칙이 아니라 동시성 원리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신의 뜻을 물으면 신이 점을 통해 뜻을 알려주며, 인간은 점으로 나타난 그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융은 주역 점의 세계가 바로 그런 세계라고 보았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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