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어떤 사별

이윤진이카루스 2010. 7. 28. 07:23

 

   냉엄한 표정을 내 기억에 남긴 어머니는 내가 다섯 살이 되자 이 세상을 떴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동생 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동네를 맴돌며 살았는데 한국전쟁이 끝난 지 몇 년이 지나서 동네 풍경은 늘 을씨년스러웠다. 한국전쟁의 결과를 남쪽에서 보면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지만 패배성이 짙었고 그리하여 모든 국가시설과 국민들의 재산이 황폐해진 나라와 내가 태어난 어촌의 모습은 궁핍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전쟁은 끝났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생활에 지쳐 죽었다. 연탄불을 피워놓고 가족이 모두 자살하거나, 선착장에 버려진 복어알을 먹고 세상을 버렸다. 소나무에 목을 매거나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거나 물에 뛰어드는 등 사람들이 죽는 방법은 여러가지였다.

   우리가 살던 단칸방 옆에 앞집과 붙어서 마당이랄 것도 없는 마당이 있는 집이 있었는데 늙은 홀아비와 청년인 아들 두 가족이 살았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것이지만 늙은이와 젊은 아들은 당시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던 바와 같이 일정한 직업이 없었던 듯하다. 농토가 있어서 주기적으로 농사일을 돌보는 눈치도 보이지 않았고 가끔 손수레를 끌고 나가거나 지게를 지고 나가는 늙은이의 모습이 보였고 젊은 아들은 빠른 걸음을 나다니지만 무엇을 하는지 어린 나는 몰랐다.

   젊은 아들이 군에 갔다는 소문을 듣고 몇 년이 흘렀다. 그 아들은 군에서 제대를 하면서 아리따운 처녀를 데리고 귀가했다. 매년 지붕을 새로 이어야 하는 초가집에 마당도 없고 방이 한 칸인지 두 칸인지 불분명했던 청년의 집으로, 아니 늘 빈한하여 추레한 마을에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청년을 따라 들어왔으니 동네 사람들의 시선은 당연 그 여인네에게로 몰렸다. 젊은 여인은 행복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지만 다소곳하게 시집살이를 하는 듯했고 젊은 남편은 손수레를 끌고 자주 마을을 들락거렸다. 어느새 마을에서는 젊은 아내를 거느린 남편에 대한 평가가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그 평가는 모두가 가난한 시절에 특히 아내를 위하여 살아남으려는 인내와 용기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우리 집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가 살던 단칸방과 젊은 부부가 신혼생활(?)을 하던 옆집과의 거리는 불과 10미터가 안쪽이었으니 작은 말싸움도 우리 귀에 들려왔으리라. 그렇다면 싸움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젊은 부부가 부부싸움을 벌이고 있는가? 아니다, 큰 소리로 싸움을 하는 사람은 늙은 아비와 젊은 아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싸우는 이유를 지금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싸움이 끝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과 그 불행한 사건에 뒤이은 또 다른 사건으로 인하여 나는 늙은 홀아비가 젊은 아들내외를 시샘하여 언쟁이 일어나곤 했다고 생각한다.

   늙은이와 젊은 아들 간의 싸움은 빈도가 높아졌고 싸움의 격렬함도 점차 거세어졌다. 그 싸움의 와중에서 젊고 아름다운 새색시는 얼굴에 수심을 가득 채우고 쌀 씻은 물을 버리러 집 밖으로 나오거나 물을 길어 집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초등학생인 나의 눈에 외지에서 온 여인만이 보일 수 있는 매우 신선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자태로 보였다. 싸움은 그치지 않았고 새색시의 종종걸음은 더욱 애타는 듯 비척거리는 듯했다. 잔인한 시간이 계속 흘러가면서 젊은이의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떠올랐고 새색시의 얼굴에는 슬픔이 짙어졌다.

   감정의 골은 늘 막다른 골목에서 비극을 낳는다. 감정이 지배하는 전쟁과 가난한 사회는,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이미 이성을 상실했기에 미친 결과를 낳곤 한다. 그런 상황에 때문에 개인도 가정도 미친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게다.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시설물과 비교해서 그 전쟁으로 백성들이 입은 정신적 충격은 거의 정신질환에 가깝도록 혹독하고 전국적인 것으로 나는 진단한다. 아마도 그 정신질환은 전쟁을 겪은 1세대에서 후세대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닐지, 나는 가끔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정신병을 앓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리라고 누가 확신할 것이며, 대대로 이어지는 정신병이 어느 세대에 끝날 것이라고 누가 확언할 수 있을까?

   젊은 아내와 늙은 아비 사이에서 고뇌하던 젊은이의 선택은 오로지 한 길일 수밖에 없었다. 젊은이는 어느 날 음독으로 아비에게 항의했고, 우리 마을에는 긴박한 기운이 감돌았다. 자동차가 없고 낡은 버스가 털털거리며 자갈투성이 비포장 신작로를 지나다니던 시절에 구급차가 있을 리 없어서 시골 의사가 달려왔고 친척들이 몰려들었다. 이내 젊은이의 목숨은 건졌다는 말이 돌았고, 젊은 새색시의 안도한 얼굴도 보였다. 그러나 그런 안심도 순식간에 두려움과 비통으로 뒤바뀌었다. 어른들이 어린 소년에게까지 어른의 죽음에 대하여 세세하게 말해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그 젊은 남편의 사인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젊은이는 음독의 후유증으로 곧 사망했다.

   아무리 죽음이 흔하던 시절이었다 할지라도, 평소에 젊은 부부에 대하여 부러움과 시기까지도 느끼던 마을 사람들에게는 절망이 찾아왔다고 나는 지금 회상한다. 당황과 절망이 마을 사람 모두를 침묵시켰고, 오직 새색시의 흐느낌과 늙은 아비의 황망한 모습이 어린 나의 눈망울에 맺혔다. 때늦은 후회라니... 인간의 능력이나 이성적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 나의 뇌리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면 나의 어머니가 갑작스레 세상을 뜬 것과 이 젊은이가 느닷없이 독약을 마시고 우리 곁을 떠난 사건 때문이지도 모른다. 어떻게 사람들은 그렇게 비이성적으로 냉혹하게 행동할 수 있으며, 또한 비극을 맞이하고 절망에 빠질 수 있는가, 그것도 장성한 어른이자 경험이 많고 연륜이 풍부한 노인이 말이다?

   젊은이가 죽은 후 두 가지 사건이 벌어졌는데 나는 그 두 가지 사건의 순서를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그 두 가지 사건 중 하나는 아름다운 여인이 우리 마을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간 일이다. 나머지 사건은 우리가 살던 단칸방 옆에 있는 그 노인의 집으로 노인의 친척들이 몰려든 일이다. 젊은이를 장사지낸 후 많은 사람들이 그 노인 집으로 갑자기 몰려든 것을 나는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 더구나 몰려온 사람들은 살기등등할 정도로 태도가 심상치 않았다. 곧 노인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징치하는 듯한 고함이 들렸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비명과 고함은 계속되었다. 그 후 홀로 남은 노인의 모습은 더욱 흉측해졌고 기운은 더욱 쇠잔한 듯 방문을 열고 겨우 밖을 내다보곤 했다. 그런 그 노인의 모습에서 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투스의 말을 이제야 떠올린다: “사람은 죽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본다.” 아들이 죽고, 며느리는 떠나서 세상에서 자기만 남은 노인이 자신의 죄악을 생의 마지막 숨결까지 기억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노인의 삶은 어떤 것일까?

   새색시는 짐을 싸들고 남편이 죽고 없는 집을 떠났다. 그녀가 떠나던 날, 내가 그녀의 표정에서 받은 인상을 오랫동안 나는 뇌리에서 지울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50년이 넘도록 세상을 살면서 그렇게 처연한 표정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20대 초반의 커다란 눈망울과 복숭아 빛 얼굴을 지닌 여인이 늙은 시아버지의 질투 때문에 남편이 죽은 집을 몇 달 만에 떠나 친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막막함과 회한과 애절함을 나는 어떻게 잊을까? “그것이 삶이다.”라고 말하고 우리는 돌아서서 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비극으로 돌변하는 삶을 우리는 과연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세월 가면 모두 잊게 된다고, 어쩔 수 없이 살아가게 된다고 뇌까리면 아무 미련도 없이 우리는 미래를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집을 떠나는 새색시의 표정과 뭇매를 맞으며 비명을 지르던 노인의 음성을. 그리고 지금도 나는 사람을, 특히 어른이라는 사람을 별로 믿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