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 도널드 그레그 - “박정희 1972년 핵개발 착수…1977년 포기했다” [5·16 쿠데타 50년] 미군이 1973년 베트남서 철수하자 한국은 동맹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박정희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미국이 핵개발을 멈추게 했다. 권태호 기자 »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1968년 한.. 기사 및 퍼온 글 2011.05.13
진보적 ‘한반도 전문가’ 피터 벡 “87년 서울여행 왔다 시위참여…난 미국인 386” [한겨레가 만난 사람] 진보적 ‘한반도 전문가’ 피터 벡 권태호 기자 » 한반도 전문가인 피터 벡 게이오대 방문연구원이 자택에서 한국과 북한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1987년 5월 말,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2학.. 기사 및 퍼온 글 2011.05.10
독재정권에 대한 조언의 딜레마 / 대니 로드릭 세계의 창] 독재정권에 대한 조언의 딜레마 / 대니 로드릭 »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리비아 사태가 일어나기 전, 하버드대 동료 학자가 내게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의 아들 사이프 알이슬람이 미국을 방문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사이프.. 기사 및 퍼온 글 2011.04.23
핀란드에서 본 카이스트 학생들의 죽음 / 김해식 [왜냐면] 핀란드에서 본 카이스트 학생들의 죽음 / 김해식 ‘어떻게 입학했지?’ 생각했던 친구가 몇년 뒤 유명 저널에 등장했습니다 잠시 뒤처졌다고 패배자로 몰면 미래의 훌륭한 과학자를 잃게 됩니다 김해식 핀란드 오울루 핀란드에서 살고 있는 과학자입니다. 최근 카이스트 학생들의 죽음을 접.. 기사 및 퍼온 글 2011.04.16
질문이 사라진 교실 사회 사교육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질문꺼리 별로 없어요" [질문이 사라진 교실] <상> 일방통행식 수업, 교사도 학생도 지친다 학원 선행학습, 궁금증 촉발할 기회 빼앗아 즉답 원하는 교사는 '핑퐁식 수업'으로 일관 일방향적 강의식 수업 결국 상아탑까지 연장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1 2 3 고등.. 기사 및 퍼온 글 2011.04.14
'교사 십계명'을 되뇌자 아이들이 꽃처럼 보였습니다 ‘교사 십계명’ 되뇌자 아이들이 꽃처럼 보였습니다 전쟁 대신 연애를 하기로 했습니다 ‘교사 십계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첫째, 몇 번이든 학생들과 인사하라 둘째, 학생들에게 미소를 지으라 셋째,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라…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40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40 천장이.. 기사 및 퍼온 글 2011.04.09
[김대중을 생각한다]<13> 보수적 자유주의의 성취와 한계 전교조는 넘었으나 보안법은 넘지 못한… [김대중을 생각한다]<13> 보수적 자유주의의 성취와 한계 기사입력 2011-04-06 오전 7:52:08 자유민주주의와 한반도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어려운 인연"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자유"라든가 "입헌"(立憲 : 헌정)과 같은 단어들이 <서유견.. 기사 및 퍼온 글 2011.04.06
[김대중을 생각한다]<9>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나는 삶 한일국교정상화를 지지한 그 용기의 비밀은 [김대중을 생각한다]<9>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나는 삶 기사입력 2011-03-28 오전 9:40:19 내가 김대중을 훌륭한 지도자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71년 4.27대통령 선거 때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중임을 마치고 1969년에 삼선개헌을 하여 여당의 대통령 후.. 기사 및 퍼온 글 2011.03.29
한국 청소년 '공동체 의식 희박' 원인은 '경쟁위주 입시교육' 사회 한국 청소년 '공동체 의식 희박' 원인은 교육 전문가들 '경쟁위주 입시교육' 주범 지목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관련기사 한국 청소년들의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 주요 35개국 중 꼴찌라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은 경쟁 위주의 입시교육이 학생들의 인.. 기사 및 퍼온 글 2011.03.27
나는 내가 미워졌다 / 하성란 [삶의 창] 나는 내가 미워졌다 / 하성란 하성란 소설가 » 하성란 소설가 이삼십대를 함께 보낸 친구를 얼마 전 창졸간에 떠나보냈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그의 마지막 길은 가족과 절친했던 친구 셋이 함께했다. 십수년 전 한 일간지의 신춘문예로 등단을 했지만 그에게는 단 한 권의 시집도 없었다... 기사 및 퍼온 글 2011.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