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2월24일 아폴로 8호에서 우연히 잡힌 사진 ‘어스라이즈’(지구돋이)는 암흑 속 우주를 외로이 항해하는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질문을 제기했다. 1970년대 이후 환경운동과 환경정치가 전면화됐고 지구를 관계의 복합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이 등장했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별/어스라이즈
창백해서 가슴 아픈 나의 지구여
창백해서 가슴 아픈 나의 지구여
4월22일 전세계에서 ‘지구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푸른색의 지구 모습이 곳곳에 걸렸습니다. 이 사진의 유래를 아시나요? 역설적이지만 우주 개발의 역사는 지구환경의 문제를 깨닫게 해주었지요. 아폴로호, 보이저호, 카시니호…. 금방이라도 암흑이 삼켜버릴듯 창백하게 푸른 지구의 모습은 생태계는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어스라이즈’(지구돋이)에서 ‘블루 마블’(푸른 구슬) 그리고 ‘창백한 푸른 점’까지 밖에서 본 지구를 살펴봤습니다.
1968년 12월24일 아폴로 8호
최초로 달에 간 세 명의 우주인
좁은 창문에 지구가 비쳤다
청초하고 연약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사진은 지구를 바꿨다 우주를 탐사하며 지구를 보았다
멀리 갈수록 푸른 구슬 작아지며
인간과 동식물, 공기와 바다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고
하나의 생명체로 보였다 프랭크 보먼 “오 마이 갓~ 저 아래 좀 봐. 지구가 떠오른다. 와우, 정말 예쁜데.” 윌리엄 앤더스 “(농담으로) 어, 찍지 마요. 그건 업무 밖인데.” 보먼 “(웃음) 짐, 컬러필름 있어?” 앤더스 “컬러필름 한 통만 빨리 줘요.” 짐 러벌 “오 맨! 정말 멋지구나!” 앤더스 “빨리, 빨리 줘요.” 달 궤도를 공전하던 아폴로 8호의 창문 밖으로 푸른 지구가 슬쩍 지나갔다. 우리가 어떤 장면을 본 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드는 것처럼, 30여년 전의 세 우주인도 너나 할 것 없이 허둥지둥 카메라를 찾았다. 나중에 비밀해제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8호 선상 녹취록’에 이들의 대화가 기록됐다. 1968년 12월24일 아폴로 8호는 사흘 전 미국 플로리다의 케네디우주센터를 이륙했다. 달 궤도에 진입해 분화구만 가득한 삭막한 행성을 공전하며 구석구석을 훑은 최초의 유인우주선이었다. 프랭크 보먼 선장 그리고 사령선 조종사인 짐 러벌 그리고 착륙선 조종사인 윌리엄 앤더스가 탔다. 그들의 임무는 지구가 아니라 달 표면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달 표면 위로 지구가 떠올랐다. 세 명의 우주인은 넋을 잃고 창문에 달라붙었다. 우주선은 자체 회전하며 항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구는 세 개의 창문으로 나타났다 금세 사라졌다. 언뜻 비친 지구는 울퉁불퉁하고 황막한 달의 대지 위로 영롱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960년대 미국의 록그룹 ‘벨벳언더그라운드’가 ‘페일 블루 아이스’에서 계속해서 음울하게 읊조리던 그 빛깔이다. “당신의 창백한 푸른 눈동자가 아른거립니다.”(Linger on, your pale blue eyes) 창백하고 푸르렀다. ‘페일 블루’의 구체가 세 사람의 눈에서 아른거렸다. 푸른 바다와 하얀 구름의 소용돌이가 암흑 속에서 빛났다. 이내 어둠에 잡아먹힐 것처럼 나약하고 청초한 지구의 사진을 세 사람이 찍어댔다. 컬러필름을 손에 쥔 이는 당시 서른다섯살의 막내 조종사 앤더스였다. 그는 지난 18일 미국 경제지 <포브스> 인터넷판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있던 측면 창문이 가장 깨끗했고, 나머지 창문들은 기름때가 꼈어요. 내 사진 실력이란 게 달에 초점을 맞추고 조리개를 하나씩 바꾸며 찍는 게 전부였죠… 원래 우리 임무는 지구를 촬영하는 게 아니었어요. 달의 분화구를 찍으면서 앞으로 우주선 착륙이 가능한 곳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임무 외 허가되지 않은 일을 한 거죠.” 지금도 미국 항공우주국 사진 데이터베이스에 가면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 #14-2383이 있다. ‘어스라이즈’(Earthrise) 혹은 ‘지구돋이’로 불리는 사진이 태어난 건 우연이었다. 이 사진은 세상을 바꿨다. 역시 우연의 일치지만 이 사진이 찍힌 건 1968년 12월24일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상서로운 날이었다. 1970년대 평화와 연대의 노래를 지구에 몰아치게 한 68혁명의 원점인 1968년, 그리고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기 때문이다. 원래 아폴로 8호의 우주인들이 지구에 보여주기로 한 건 따로 있었다. 지구와 텔레비전 생중계로 연결해 창세기를 낭독하는 임무였다. 예정대로 보먼, 러벌, 앤더스는 달 궤도를 도는 아폴로 8호에서 창세기 1장 1~10절을 나누어 읽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지구를 밖에서 본 이들의 목소리는 장엄하게 지구에 방송됐다. 1968년 12월24일 이후 지구에서는 새로운 일들이 벌어졌다. 환경의 세기를 잉태하다
윌리엄 앤더스가 달을 “지저분한 해변의 모래사장” 같다고 표현했듯이, 달은 삭막하고 황막했다. 지구돋이 사진에서는 한 프레임에 지구와 달이 걸려 있다. 황막한 달 분화구 위로 지구는 손톱 같은 모습으로 뜨면서 더욱 청초해 보였다. 인류 최초의 달 비행이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최초로 달에서 지구를 응시했다.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듯이 지구 밖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행위는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종류의 질문과 대답을 얻게 해주었다. 사진을 통해 비친 우리의 행성은 맑고 연약했다. 보기에 안쓰러웠다. 영국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은 1968년 12월24일 시선의 혁명적 전환에 대해서 20년 전인 1948년에 이렇게 예견했다. “우주 밖에서 지구의 사진을 찍는 게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새로운 차원으로 인식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시인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1968년 12월25일 <뉴욕 타임스>에 이런 글을 남긴다.
“영원한 고요를 떠다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진정으로 보는 길은 우리 자신을 지구의 탑승자로 인식할 때부터다. 지구를 밝은 사랑스러움 위에 함께 선 진실한 형제로 영원한 냉혹을 함께 항해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1972년에는 ‘블루 마블’이라는 사진이 공개됐다. 아폴로 17호가 12월7일 달로 가던 도중 지구에서 약 4만5000㎞ 떨어진 지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지구는 ‘푸른 구슬’처럼 보였다. 두꺼운 구름 아래 하얀 빙하가 드리운 대륙은 남극이 확실했다.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 그리고 마다가스카르 섬의 해안선이 뚜렷했다.
사진을 통해 인간은 외계로부터 지구를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허약한 ‘우주선 지구호’를 타고 외로이 우주를 항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치게 되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로버트 풀은 2008년 책 <어스라이즈: 어떻게 인간은 지구를 보았는가>에서 “지구의 사진이 갑자기 도처에 나타났다. 새로운 문명의 세기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생태적 시대의 시작 말이다”라고 썼다.
1970년대는 우주개발의 세기이기도 했지만 환경운동의 세기이기도 했다. 환경문제에 지구적으로 대응하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지구의 벗 인터내셔널’이 같은 해인 1971년 태어났다. 환경운동가들은 화력발전소 굴뚝에 올라가고 남극의 포경선을 막아섰다. 1970년 미국에 환경청(EPA)이 설치됐고, 1972년 영국에 환경부가 업무에 들어갔다. 1992년에는 세계 정상들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모여 환경보전을 위한 지구정상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를 기점으로 기후변화협약, 생물다양성보전협약 등 지구적 환경의제가 외교 문제로 논의됐다. 1970년부터 매년 4월22일 전세계에서 진행되는 ‘지구의 날’ 행사의 상징도 블루 마블이고, 1979년 제임스 러블록이 쓴 기념비적인 책 <가이아: 생명체로서의 지구>의 표지도 창백하고 파란 지구다. 러블록은 이 책에서 인류가 우주여행을 통해 인식론적 전환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공위성들은 지구 대기권과 지표면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지구로 전송하였으며, 그 결과 우리들은 지구의 생물적 부분과 무생물적 부분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새로운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개념은 곧 한 가설을 낳게 하였는데, 그 가설에 따르면 지구의 생물들, 대기, 대양, 지표면은 모두 함께 한 복잡한 시스템을 형성하여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간주할 수 있으며, 그 자체가 이 지구를 생명이 약동하는 쾌적한 장소로 만들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가이아는 지구의 생물권, 대기권, 바다와 육지를 하나의 복합적인 실체로 보는 이론이다. 지구는 능동적으로 조절되고 균일한 상태를 지니려고 하는 항상성을 가진 존재다. 인간과 다양한 생물은 가이아의 일부로 가이아에 협력한다. 광합성을 하는 개구리밥, 메탄가스를 내뿜는 소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대기 성분은 지구의 생물들에 의해 착실하게 만들어졌다. 가이아를 이해하는 것은 지구상의 가장 큰 생물체를 찾는 것이다. 반대로 외계생명체를 찾는 것은 지구 밖에 ‘살고 있는’ 어떤 별과 그 부분들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손톱만한 지구는 픽셀이 됐고
1990년 2월14일 지구에서 60억㎞를 뛰쳐나간 보이저 1호가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의 지구는 하나의 픽셀조차 되지 않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이었을 뿐이다. 우주과학자이자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의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명명하며 그렇게 불렀다.
우주에 나간 우주선들은 지금도 지구를 찍는다. 토성 궤도에서 탐사를 수행 중인 카시니호는 2013년 7월 사진을 보내왔다. 토성의 고리 오른쪽에서 지구는 하나의 푸른 픽셀로 달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유럽우주국의 금성 탐사선 비너스 익스프레스호는 2005년부터 지구를 찍어 대기 성분을 분석하기도 했다. 지구에 대한 연구가 역설적으로 어떤 행성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도 목성 탐사선 갈릴레오호에 이런 방식을 사용해 연구했다. 지구로부터 나가 외계인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인류가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방법이다. 1968년 손톱 같은 지구는 이제 먼지 같은 픽셀이 되었다. 인간은 그동안 멀리 나아갔고 지구는 그만큼 작아졌다. 칼 세이건은 그의 책 <창백한 푸른 점>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최초로 달에 간 세 명의 우주인
좁은 창문에 지구가 비쳤다
청초하고 연약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사진은 지구를 바꿨다 우주를 탐사하며 지구를 보았다
멀리 갈수록 푸른 구슬 작아지며
인간과 동식물, 공기와 바다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고
하나의 생명체로 보였다 프랭크 보먼 “오 마이 갓~ 저 아래 좀 봐. 지구가 떠오른다. 와우, 정말 예쁜데.” 윌리엄 앤더스 “(농담으로) 어, 찍지 마요. 그건 업무 밖인데.” 보먼 “(웃음) 짐, 컬러필름 있어?” 앤더스 “컬러필름 한 통만 빨리 줘요.” 짐 러벌 “오 맨! 정말 멋지구나!” 앤더스 “빨리, 빨리 줘요.” 달 궤도를 공전하던 아폴로 8호의 창문 밖으로 푸른 지구가 슬쩍 지나갔다. 우리가 어떤 장면을 본 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드는 것처럼, 30여년 전의 세 우주인도 너나 할 것 없이 허둥지둥 카메라를 찾았다. 나중에 비밀해제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8호 선상 녹취록’에 이들의 대화가 기록됐다. 1968년 12월24일 아폴로 8호는 사흘 전 미국 플로리다의 케네디우주센터를 이륙했다. 달 궤도에 진입해 분화구만 가득한 삭막한 행성을 공전하며 구석구석을 훑은 최초의 유인우주선이었다. 프랭크 보먼 선장 그리고 사령선 조종사인 짐 러벌 그리고 착륙선 조종사인 윌리엄 앤더스가 탔다. 그들의 임무는 지구가 아니라 달 표면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달 표면 위로 지구가 떠올랐다. 세 명의 우주인은 넋을 잃고 창문에 달라붙었다. 우주선은 자체 회전하며 항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구는 세 개의 창문으로 나타났다 금세 사라졌다. 언뜻 비친 지구는 울퉁불퉁하고 황막한 달의 대지 위로 영롱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960년대 미국의 록그룹 ‘벨벳언더그라운드’가 ‘페일 블루 아이스’에서 계속해서 음울하게 읊조리던 그 빛깔이다. “당신의 창백한 푸른 눈동자가 아른거립니다.”(Linger on, your pale blue eyes) 창백하고 푸르렀다. ‘페일 블루’의 구체가 세 사람의 눈에서 아른거렸다. 푸른 바다와 하얀 구름의 소용돌이가 암흑 속에서 빛났다. 이내 어둠에 잡아먹힐 것처럼 나약하고 청초한 지구의 사진을 세 사람이 찍어댔다. 컬러필름을 손에 쥔 이는 당시 서른다섯살의 막내 조종사 앤더스였다. 그는 지난 18일 미국 경제지 <포브스> 인터넷판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있던 측면 창문이 가장 깨끗했고, 나머지 창문들은 기름때가 꼈어요. 내 사진 실력이란 게 달에 초점을 맞추고 조리개를 하나씩 바꾸며 찍는 게 전부였죠… 원래 우리 임무는 지구를 촬영하는 게 아니었어요. 달의 분화구를 찍으면서 앞으로 우주선 착륙이 가능한 곳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임무 외 허가되지 않은 일을 한 거죠.” 지금도 미국 항공우주국 사진 데이터베이스에 가면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 #14-2383이 있다. ‘어스라이즈’(Earthrise) 혹은 ‘지구돋이’로 불리는 사진이 태어난 건 우연이었다. 이 사진은 세상을 바꿨다. 역시 우연의 일치지만 이 사진이 찍힌 건 1968년 12월24일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상서로운 날이었다. 1970년대 평화와 연대의 노래를 지구에 몰아치게 한 68혁명의 원점인 1968년, 그리고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기 때문이다. 원래 아폴로 8호의 우주인들이 지구에 보여주기로 한 건 따로 있었다. 지구와 텔레비전 생중계로 연결해 창세기를 낭독하는 임무였다. 예정대로 보먼, 러벌, 앤더스는 달 궤도를 도는 아폴로 8호에서 창세기 1장 1~10절을 나누어 읽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지구를 밖에서 본 이들의 목소리는 장엄하게 지구에 방송됐다. 1968년 12월24일 이후 지구에서는 새로운 일들이 벌어졌다. 환경의 세기를 잉태하다
토성 궤도에서 탐사 중인 카시니호가 2013년 보낸 지구 사진. 토성 고리 오른쪽의 푸른 점이 지구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