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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살 이상은 왜 ‘위안부 합의 잘됐다’ 하나?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 10. 22:18

사설.칼럼칼럼

[편집국에서] 60살 이상은 왜 ‘위안부 합의 잘됐다’ 하나? / 권태호

등록 :2016-01-10 18:51

 

“늙음은 다만 낡은 것인가, 고생하며 살아온 세월은 단지 수구냉전의 고착화에 기여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 앞에 처한 50대들의 자괴감이었다. (…) 20일 낮, 서울 도심 식당에서 젊은이들의 식탁은 ‘노무현’으로 시끌벅적했고, 50대들은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다.”

소설가 김훈이 마지막 기자생활을 한 <한겨레>에서 마지막으로 쓴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다. 2002년 대선 다음날 50대들의 풍경이다. 그때 김훈도 50대였다. 당시 김훈은 사회부 기동취재팀 소속이었고, 나는 한참 후배지만 시경을 출입하는 기동취재팀장으로 기동팀 기사를 책임졌다. ‘감히’ 데스킹 한답시고, 맨 마지막에 “노무현은 50대다.”라는 한 문장을 추가했다. ‘당신 세대가 지금 대통령이 됐는데 무슨 소리냐’는 항변이었다. 김훈 ‘선배’는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었지만, ‘천의무봉에 서툰 시다 한 땀 더 뜬 듯한’ 불경함이 점점 엄습해 최종판에서 ‘솔기 자국’을 지웠다.

지난 8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한일 위안부 문제 재협상’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합의가 잘됐다”는 응답은 26%(잘못됐다 56%, 모름 20%)였다. 그런데 연령별로 보면, ‘60살 이상’은 “잘됐다”고 답한 비율이 54%나 됐다. 20대, 30대, 40대에서 “잘됐다”는 응답이 10%대이기에 젊은층과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기사를 내보내기 전, ‘‘60살 이상’만 “위안부 합의 잘됐다”’라는 제목 앞에 잠시 망설였다.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표현을 제외하곤 조사결과를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기사 댓글 가운데 “60대 이상이면 위안부 할머니들과 나이가 가장 가까울 텐데, 왜 저런 결과가 나오느냐”는 불만과 의아함이 섞인 목소리가 여럿 있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만일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이번 합의를 했다면, 아마 ‘60살 이상’의 여론조사 결과는 완전히 딴판이었을 것이다. 그 경우, 상대적으로 더민주당 지지세가 높은 젊은층이 지금 ‘60살 이상’처럼 더민주당을 옹호해 줬을까? 정당 지지를 철회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새누리당 하기는 쉽고, 야당 하기는 어렵다.

2002년 50대들은 지금 60대다. 그때 이후 60대 이상 고연령층의 정치·투표 행태는 더욱 강고해졌다. 목소리도 커지고, 정파성도 점점 심해지는 듯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에 대한 강렬한 향수 탓이 크다. 하지만 이젠 ‘60살 이상’이면 갖췄을 법한 지혜로움, 너그러움, 중후함 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태에 ‘경험’의 쓸모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상실감에 맞서는 대응법이 ‘60살 이상’답지 않기 때문인 건 아닌지….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지난 2012년 대선 직후 <조선일보>(12월21일치)는 투표율이 비약적으로 높았던 50대들의 반응을 모아 ‘50대들 “내 자식의 미래 걱정돼서, 내 자식과 다른 선택 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때 50대 후반은 지금 ‘60살 이상’이다. 나도 ‘내 자식의 미래 걱정’될 때 많다. 하지만 ‘60이 되면, 자식 또래 젊은이들이 내 생각과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면, 자식 뜻 거스르는 선택을 해 ‘좋은 세상’ 물려주기보단 차라리 기권하겠다’는 다짐을 혼자 한다. 미래는 내가 아니라 자식이 사는 세상이고, 자식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고,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60살 이상’ 세대에 이를 요구하지 않는다. ‘60살 이하’들이 나중에 ‘60살 이상’처럼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