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교육정책

이윤진이카루스 2010. 7. 28. 07:29

   2009년 5월 14일 18:00 수원에 있는 경기과학교육원에서 전교조 경기도지부 일꾼연수회가 열렸다. 이 연수회에 신임 경기도 교육감 김상곤 선생님과의 (이하 교육감) 대화 시간이 있었다. 이 대화시간은 결국 전교조 조합원들의 지지에 대한 교육감의 감사 표시와 교육감 임기 1년 2개월 동안 교육감이 어떻게 경기도 교육을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의견교환 시간이었다.

   이 연수회에 참가한 나는 교육감의 정책이 어떤 지향점을 지니고 있는지, 다시 말해서 오랫동안 진보진영에 몸을 담고 있던 교육감의 정치적 지향점은 과연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기초한 좌파적 사상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런 분이 극우 파시스트적 사상을 포용하고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환언하여 교육감을 좌파나 우파라고 단정 지을 근거가 나에게는 너무 부족했다. 더구나 교육감은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의견일치를 이루었지만 교육에는 좌파도 우파도 없다고 주장했다. 교육에서 자신이 좌파도 아니요 우파도 아니라면 결국 교육은 진리추구의 길을 가야 한다는 말이고 좌익도 우익도 진리추구의 길이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교육감이 말하는 교육의 길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 점을 중점적으로 알기 위하여 연수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교육감이 장내에 입장했다. 조합원들의 박수소리가 연수원에 크게 울렸고 환호성까지 진동했다. 조합원들은 한 마디로 고무되어 있었다. 사상최초로 선출된 진보적 교육감이 아닌가? 조합원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다. 대화의 진행은 전교조 경기도지부장이 질의하고 교육감이 답변하고, 나중에 조합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도대체 질문을 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라. 중언부언에 설교적 질문에, 그저 학교현장에서 일어나는 학교운영에 대한 불만을 교육감에게 퍼붓듯이 아니면 분풀이 하듯이 대화를 하자는 것인가? 나는 겨우 교육감의 답변으로 질문의 내용을 대부분 알 수 있었다. 교육감의 답변은 또렷했고 분명했다. 그리고 매우 조심스럽게 교육감은 조합원들을 다루고(?) 있었다. 나이와 경륜으로 보아 게임이 안 되는 논쟁이었다. 아니 애초부터 논쟁의 장이 아니라 전교조 조합원들이 교육감을 모시고 연수를 받는 연수회였던 것이다. 오죽해서 교육감이 마지막에, “공교육 정상화는 교장과 교감도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전교조 선생님들도 노력해야 한다.”고 논평했겠는가? 전교조 선생들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하여 노력한 바가 없거나 적어도 노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교육감의 마지막 이 말은 나에게 비아냥거림처럼 들렸다: “당신들이 학교현장에서 하는 일이란 고작해야 불평불만을 터뜨리는 일이 아닌가? 현실적으로 교장과 교감을 무시하고 전교조 선생들의 편에 서서 교육감이 일할 수 있겠는가?” 관료조직에서 자리를 보존하고 진급을 노리는 목적이라 할지라도 최소한도 교장과 교감은 교육감에게 불손하지는 않지 않은가?

   교과서 문제, 임시직 문제, 무상급식 문제, 일제고사 문제... 모두 일상적이고 알려진 문제였고 알려진 답변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내가 상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지엽적이고 해답이 명백한 문제보다 교육감의 교육철학, 나아가 정치철학이 궁금했던 것이다. 어떤 지향점으로 우리 교육을 바라보고 있는가가 나의 관심사였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교육감의 발언을 경청했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답변이 교육감의 입에서 떨어졌다. 교육감은 혁신학교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리고 혁신학교란 “서구적 학교”를 말한다고 언명했다. 서구적 학교라니? 교육감은 서구적 교육을 모델로 우리 교육을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를 지녔다!!! 다시 말해서 교육감은 친서방주의자인 것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와는 너무나 다른 사상을 교육감은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진보적 성향을 지닌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반미주의자이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적어도 동정적이지 아니한가? 교육감의 발언은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나는 물론 (비판적) 친미주의자이자 친서방주의자이다. 우리 교육이 서구의 교육을 따라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자유주의가 미국의 금융위기로 무효임이 증명되었고 (애당초 자본주의자나 자유주의라는 것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산업혁명 기간 동안에 발생한 노동자에 대한 가혹한 착취를 마르크스가 지적했지만 산업혁명의 시작은 노동자의 물질적 해방을 목표로 한 것이다.) 이미 세상에서 알바니아를 제외한 어떤 국가에서도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이제 내가 교육감에게 질문을 해야 한다. 서구적 학교가 혁신학교라면 서구적 학교란 구체적으로 어떤 학교란 말인가? 서구적 학교란 역사적으로 아테네에서 시작된 두 가지 교육사상을 모태로 한다. 하나는 아카데미를 세우고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오지 말라”고 거만을 떨었던 귀족주의자 플라톤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군국주의적 스파르타에 도움을 청하여 아테네의 민주혁명을 진압했던 플라톤 일파는 결국 아테네에서 민주혁명이 성공하고 귀족들이 옛 특권을 잃자 플라톤은 이렇게 말한다, “현명한 자는 통솔하여 다스려야 하고 무지한 자는 복종해야 한다 (The wise shall lead and rule, and the ignorant shall follow.).”, “그리고 국가는 그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반(半) 신(神)으로서 제물이 바쳐져야 한다,... 은총을 받아서 신(神)처럼 된 사람으로서 (And the state will erect monuments... to commemorate them. And sacrifices will be offered to them as demigods,... as men who are blessed by grace, and godlike.).” 그와 반대로 플라톤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는 노예에게 간단한 수학문제를 가르치면서 수학문제를 노예가 풀 수 있음을 증명했고 당시 그리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추앙받던 자신의 무지를, “나는 내가 무식함을 안다 (oída oudén eidós)”라고 고백하였다. 나는 여기서 전교조와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포함하는 범야권, 심지어 민주당의 지지로 교육감에 당선되었다고 주장하는 교육감이 가리키는 경기도 교육의 지향점은 분명히 소크라테스적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플라톤적 교육은 귀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 교육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경기도 교육은 적어도 앞으로 1년 2개월 동안 소크라테스적 교육을 지향하게 된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적 교육은 어떤 교육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주 쉽다. 평등적이고 산파적(産婆的) 교육방식으로 산파적 교육방식은 “진리는 명백하다”는 권위주의적 주장과 반대로 진리를 찾기란 어렵다는 전제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산파적 교육은 대화로 진리에 다가가는 교육이므로 폭력이 배제된다. 어차피 폭력은 귀족주의적이고 권위적인 플라톤의 사고에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산파적 교육은 “나는 내가 무식함을 안다”는 고백을 근거로 교육이 시작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가진 지식은 진리(epistēmē)가 아니라 추측(doxa)이라는 전제로 진리에 다가가는 교육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진리에 다가가는 방법은 폭력이 아니라 논박(elenchus)을 통할 수밖에 없는데 논박은 진리가 아닌 추측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추측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논리적 맹점을 들추어내어 반박하는 것인 비판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네 이론의 이런 점이 틀렸으니 대안을 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적 교육에서 출발점이 문제가 되는데 지식탐구의 출발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지식탐구의 출발은 문제에서 시작된다. 인류 역사상 모든 지식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이 문제의식은 전통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전통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지식도 갖지 못하는 백지 상태가 된다. 여기서 전통의 중요성이 대두한다.). 귀족사회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도래한다. 귀족사회가 왜 무너지는가라는 문제가 대두한다. 그 문제에 플라톤은 민주주의는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에 군주제를 택해야 하고 가장 현명한 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답변한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아테네의 민주혁명으로 기득권을 모두 잃게 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 사후 그리스 사회에서 최고로 현명하다는 자신의 명성을 염두에 두고 이따위 반동적 언행을 쏟아낸다. 이 플라톤의 주장에 “현명함의 기준이 없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택한다,”고 버트런드 러셀은 응수한다.

   이제 서양교육의 문제해결 과정을 알아보자. 먼저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은 이론을 구축하는데 역시 그 이론은 진리가 아닌 추측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이론을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반드시 실수가 난다. 다시 말해서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면 현실에 딱 맞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반드시 다른 실수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발명하면 그 약의 후유증으로 몸의 다른 부분이 쇠약해지거나 적어도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 다시 이론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실수제거 과정이다. 그러나 실수를 제거하여 즉, 이론을 보완하여 다시 현실에 적용하면 언젠가 다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인간사에서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문제는 계속되고 또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노력 또한 계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탐구방식을 도식으로 나타내면:

 

         P1 → TT → EE → P2

 

이다. 이 도식에서 P1은 문제 1 (Problem 1), TT는 가설 즉, 일시적 이론 (Tentative Theory)을, EE는 실수제거 (Error Elimination)를, 마지막으로 P2는 문제 2 (Problem 2)를 의미한다. 이 도식은 가설에 따라서 얼마든지 분화할 수 있으며 실수제거 역시 그 가설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을 나타날 수 있으므로 문제 2도 우리가 예기하지 못한 결과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즉, TT는 TT1, TT2, TT3, TT4...., EE는 EE1, EE2, EE3, EE4 등으로 분화할 수 있다. 다만 문제를 적시하여 가설을 세우는 과정에서 가설이 많을수록, 다시 말해서 여러 사람이 가설 구축에 참여할수록 문제를 더 정확하게 적시하여 더 많은 문제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성립하므로 민주주의의 다수 참여라는 필수적 요건이 과학적 탐구나 교육에서도 필수적 요건이 된다. 아니 역으로, 인간이 발견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적 탐구의 결과이기 때문에 형이상학적 이론인 정치학에도 민주주의적 논리가 적용된다고 우리는 말하여야 하는가?

   그렇다면 서양의 과학적, 다시 말해서 이성적 탐구과정을 시작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지금까지 아시아 사람들이나 서양 사람들이 알고 있던 서양과학의 시조는 소크라테스와 스콜라 철학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밝혀지는 바와 같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중에서 제노파네스(Xenophanes)와 헤라클리투스(Heraclitus)와 파메니데스(Parmenides)가 비판을 통한 진리접근이라는 방식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고, 결국 소크라테스라는 인류의 스승을 배출해냈다. 탈레스(Thales)로부터 시작되는 서양철학은 제노파네스에 이르러 마침내 진실을 위하여 투쟁하고 애매모호함을 배격하여 심오한 사색가인체하는 태도를 버리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세상에 대하여 경이의 눈을 가지도록 하게 된다.

   그러면 이런 과학적 서양 교육을 최초로 왜곡시킨 자가 누구였고 어떻게 왜곡시킨 것이고 우리는 그 왜곡에 어떻게 빠져있는가? 먼저 문제해결 과정에서 가설을 설정하고 그 다음에 관찰을 통하여 가설이 현실에 통하는지를 알아보는 방식이 연역법이다. 그 연역법과 반대로 가설보다는 개별적 사례를 관찰하여 일반적인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이 귀납법으로, 인류 최초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발명된다. 그러나 진리는 명백하다는 권위적 주장을 하려면 어떻게 진리가 명백한가, 다시 말해서 진리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대두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의 기준이 정의(定義: definition)라고 주장한다. 환언하면 사물을 정의하는 사물의 이름이 사물을 꿰뚫어 보기 때문에 진리의 기준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 예를 들어 소녀 즉, 어린 여자아이라는 말이 그 말이 정의하는 바와 같이 어린 여자아이와 동일시 될 수 있을까? 어리다는 말 자체가 어느 정도의 나이를 어리다고 할 수 있으며, 만약 80세의 노파가 17세 여자의 위장과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소녀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는가? 여자의 신체 모든 부분의 생물학적 능력을 측정하여 나이를 환산한다면 우리는 무한히 관찰하고 측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소녀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제 상황에 적용하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여자를 의학적으로 검진하여 분석하여 한다. 그렇게 무한히 관찰한다는 것을 불가능하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무한소급내지는 무한회귀(infinite regress)에 빠진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귀납법은 무효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은 서양 인식론에 풍미하게 되어 마침내 단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최고의 지식인 (The master of all who knows)”이라고 칭송한다.

   이제 미국교육은 언제 가설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연역적 방법을 도입하여 교육방법으로 확정지었는지 알아보자. 다음 내용은 이미 내가 전교조 조합원마당에 발표한 내용으로 그 제목이 “연역적 미국교육 및 그 철학적 배경”인 글의 일부이다. 참고로 나는 그 글을 전문을 첨부자료로 이 글에 덧붙인다.

미국의 과학교육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다음과 같이 변한다:

 

수월성 추구 → 과학교양 추구

객관주의 철학 → 구성주의 철학

분과적 교재 → 통합적 교재

학문의 구조 중시 → 맥락과 연결 중시

획일적 수업 → 리얼타임식 수업

 

(구성주의란 객관적이고 항존적인 지식의 실재를 거부하고, 유용한 지식은 ‘지금’ ‘현재’ 구성되어지는 것으로 보는 이론인데, 항존적인 지식의 실재를 거부했다는 의미는 인간이 참된 지식 즉, epistēmē에 도달할 수 없다는 주장에서 고대 아테네 철학자 제노파네스, 헤라클리투스, 데모크리투스 그리고 파메니데스의 주장과 일치한다.) 그리고 구성주의에서는 ‘맥락 속에서 특수하게 구성되어 지는 지식’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학습자를 중심으로 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이 탄생한다. 아울러 수월성 추구가 과학교양 중심으로, 분과적 교재가 통합적 교재로, 학문의 구조 중시가 맥락과 연결 중시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획일적 수업이 리얼타임식 수업으로 전환되는 것은 항존적인 지식의 실재를 거부함과 동시에 전문화로부터 초래되는 지식의 편협성을 탈피하여 다양한 분야로부터 지식이 도출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198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 교육이 귀납적 방식에서 연역적 방식으로 전환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따라서 영국과 미국의 경험주의 철학은 서양 철학사나 과학사의 전통적 흐름인, (1) 이론 → (2) 시험, 실험, 비판 → (3) 새로운 이론의 과정을 밟았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제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왔다. 우리는 진보적 교육감이자 교육의 전형이 서양식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교육감을 맞이했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것은 이 교육감이 서양식 교육과 서양식 학교를 지향하면서 서양의 합리주의를, 다시 말해서 이성주의적 전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먼저 우리 전교조 조합원들이 합리적인 교육방식과 지식탐구의 과정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래야 교육감과 대화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음으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적시하자,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하자. 그리하면 약 30년 전에야 미국이 채택한 서양의 전통적 교육방식을 우리는 따라갈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감히 주장하건대, 그 길만이 우리 교육을 인류 최고의 교육으로 만드는 길이다. 반론을 환영한다. 그러나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반론이어야 한다. -끝-

_경기도_교육감의_정책-icarus5000.hwp
0.04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