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반 피셔의 베토벤 교향곡 재해석/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4. 14. 15:02

문화음악·공연·전시

베토벤 3번 교향곡의 제목은 원래 ‘영웅’이 아니었다

등록 :2015-04-13 20:14수정 :2015-04-14 13:24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베토벤 교향곡 전곡의 ‘비밀’을 아시나요?
거장 이반 피셔, RCO 이끌고 20~23일 내한 공연
프랑스혁명 전후로 뒤바뀐 베토벤 교향곡 재해석
“당신이 베토벤의 교향곡 중 한 곡이 아니라 아홉 곡 모두를 듣는다면, 베토벤의 경이로운 여정을 똑같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헝가리 출신의 거장 지휘자 이반 피셔(6)는 단언했다. 2013년 5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를 이끌고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시작할 무렵 네덜란드 공영방송(VPRO)과의 인터뷰에서였다. 오랜 연구 끝에 해독한 베토벤 교향곡의 암호를 펼쳐 보인 그는 이따금 격정에 휩싸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피셔가 제시한 핵심적인 암호는 ‘혁명’이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시민의 시대가 도래하자, 귀족에게 고용돼 그들의 요구에 맞게 곡을 쓰던 작곡가들이 거침없이 자기 내면의 감정과 에너지를 분출하기 시작했고, 베토벤이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것이다.

“온 세상이 격동하는 시대였다. 귀족들을 위한 화려하고 우아한 춤곡이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귀족계급이 사라진 마당에 클래식 음악은 무엇을 해야겠나. 야생적이며 충동적인 기질의 소유자인 베토벤은 이전까지와 전혀 다른, 충격적인 음악을 쓰기 시작했다. 교향곡에 무시무시한 힘과 맹렬함이 등장했다.”

헝가리 지휘자 이반 피셔.
피셔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1, 2번 교향곡을 지나, 3번 ‘영웅’에서부터 깜짝 놀랄 변화가 읽힌다고 했다.

“원래 베토벤은 3번 교향곡의 악보 첫 장에 나폴레옹의 성인 ‘보나파르트’라고 써 넣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에 즉위해 독재의 야망을 드러내자 격분해서 첫 페이지를 찢어버렸다. 더욱 웅장하고 격렬한 음악을 작곡한 뒤 ‘영웅’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인간을 초월한 영웅을 보여준 것이다.”

피셔는 이어 베토벤 교향곡의 ‘드라마투르기’(극작술)를 언급했다. 그는 ‘드라마투르기’야말로 이전의 작곡가들과 차별화되는, 베토벤의 천재성을 대변하는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베토벤은 한 음 한 음을 극작하듯 써내려 갔다. 5번 교향곡 3악장을 보면 많은 음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심장박동 같은 소리로 긴장감을 구축해 피날레에서 ‘쾅’ 하고 폭발시킨다. 4번 교향곡 1악장에서는 방황하던 플루트 선율이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듯하더니 틈 사이로 빛이 쏟아지면서 여기저기 꽃이 피어나 순식간에 온화한 봄이 된다. 9번 교향곡에 이르면 베토벤은 합창을 동반한 전혀 새로운 교향곡의 형식을 창조한다. 한 곡 안에서 극도의 긴장감과 시적 서정, 격정과 환희의 극단적인 대비를 보여준다.”

이러한 피셔의 해석은 현지 언론들로부터 “악보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연주한 것처럼 생생하다” “베토벤 교향곡에 신선한 빛을 비추었다”는 극찬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실황 디브이디(DVD)로도 곧 출시됐다. 그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는 박제되어 있던 RCO의 역사에 다시 뜨거운 피를 수혈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RCO는 1922부터 56년간 단 한번을 제외하고 매 시즌을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로 마무리한 전통이 있었으나, 78년 이후 35년 동안 이 전통이 끊겼다. 피셔가 이를 되살렸다고 본 것이다.

피셔와 RCO는 이번 시즌에 룩셈부르크와 서울에서 한차례씩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진행한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20일 1·2·5번, 21일 3·4번, 22일 6·7번, 23일 8·9번 교향곡을 들을 수 있다. 2008년 영국 음악전문지 <그라모폰>이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로 뽑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이반 피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셋 중 하나만으로도 애호가들의 가슴이 뛸 법한데 세가지가 한꺼번에 찾아온다니 이 공연을 상반기 가장 최고의 기대작으로 뽑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사진 빈체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