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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못해 마스터 클래스 쫓겨났던 설움" 조수미/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4. 27. 08:41

문화음악·공연·전시

조수미 “독일어 못해 마스터 클래스 쫓겨났던 설움 잊지 못해”

등록 :2015-04-26 19:22

 

음악학도 대상 무료 음악회 여는 소프라노 조수미씨

1988년 ‘지휘의 거장’ 카라얀에게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극찬과 함께 발탁된 이래 소프라노 조수미(사진)는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에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명성을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뼈아픈 실패의 경험이 있었다. 그 두 해쯤 전인 86년께, 또 다른 거장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로부터 오디션 기회를 얻었을 때였다. 서울대 음대를 마치고 83년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른 지 3년 남짓만이었다. 그런데 그는 흥분된 마음으로 오디션을 준비하던 중 지독한 목감기에 걸렸다. 그러나 거장과의 오디션을 취소할 엄두를 내지 못해 아픈 목으로 무리하게 노래했다. 예상대로 낙방, 그 날의 후유증은 오래 갔다. 한 번 부족한 모습을 본 무티는 다른 작품에서도 두 번 다시 그를 찾지 않았다.

“차라리 그 날 노래를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한 번 놓쳐버린 기회는 만회할 수가 없더군요. 어제까지 잘 한 게 아무 소용 없고, 거장을 만난 바로 그 순간에 100%가 나와야 하는 거예요.”

새달 11일 예술의전당 전석 무료
예고·음대생·장애학생 등 초대해
“공연 보고 자극받아 꿈 키우길”

모교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서
최근 30년만에 마스터 클래스 지도
“한국 후학들과 더 많이 만나고파”

소프라노 조수미 씨.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자기 관리에 더 철저히 매달렸다. 술, 담배, 스트레스 등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멀리하고 자극적인 음식도 피하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인내와 절제의 삶을 살았다.

그래도 어린 한국 여학생에게는 여전히 치이고 넘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독일 가곡을 배우려고 마스터 클래스에 들어갔다가 독일어를 못 한다고 쫓겨나기도 했고, 동양인 외모가 오페라의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며 노골적으로 캐스팅에서 배제되는 일도 겪었다. 상처 입고 눈물 쏙 빠지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탈리아, 독일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 오페라와 가곡을 원어민처럼 체화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다. 완벽하게 이해하고 암기하고 발음할 때까지 어학에 매달렸다. 그런 노력 덕분에 그는 20대에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미국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오스트리아 빈국립오페라극장, 프랑스 파리오페라극장에 모두 주역으로 설 수 있었다.

오페라 가수로서 궤도에 오른 뒤, 그는 자신의 길을 뒤따라 걷는 후배를 보며 애틋한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이끌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연주자로서의 삶이 너무 바빴다. 이따금 마스터 클래스를 부탁 받을 때 외에는 학생을 지도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자신이 고교 시절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의 노래를 실연으로 접한 뒤 자극 받아 꿈을 키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성악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기로 했다.

그는 새달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무료 음악회 <마이 드림…뮤직!>을 연다. 예고, 음대생 등 전공자 뿐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 음악 공부를 하는 사람들, 음악을 좋아하는 장애학생들도 초대한다. 혹시나 놓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자신의 페이스북(facebook.com/sopranosumijo)으로도 사연을 받아 100쌍을 초대한다. 전석 무료 공연이다.

“한국 음악가로서 내 나라 음악학도들에게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마음에는 품고 있었지만, 이런 무대가 성사되는 데에 시간이 걸렸죠.”

그는 최근 모교인 이탈리아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서도 벨칸도 창법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동양에서 배우러 왔던 어린 여학생이 졸업 30년 만에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그들의 음악을 가르친 것이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통해 그는 자신이 달라졌음을 느꼈다고 했다. “예전에는 성질이 급해서 한 두 번 가르쳐서 못 따라하면 기다려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군요. 앞으로는 학생들과 더 많이 접촉하고 도울 기회를 만들 생각입니다.“

이번 공연의 연주 프로그램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가곡과 유명 오페라 아리아들로 이뤄진다. 성악 전공자들에게는 입시 과제로 다뤄지는 곡들도 포함된다.

콘서트에서는 학생들과 짧게 나마 직접 대화하는 시간도 가지려 한다. 그는 이번 음악회에서 만나지 못하는 후배 성악가들을 위해서도 조언을 남겼다.

“거장을 만날 기회에 대비해 늘 100%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오디션에서는 무조건 자신만만하게 보이세요. 오디션이나 콩쿠르에서 탈락하더라도 곧바로 그를 찾아가서 내 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공부하면 좋은지 물어보세요. 웬만하면 한 마디는 해줄 겁니다. 거장이 해주는 그 한 마디가 엄청난 도움이 될 거예요.”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사진 에스엠아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