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고전](35)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ㆍ부당한 세상 바꿔달라는 기도 대신 읽고 또 읽어라, 그것이 혁명이다
그의 글은 거침없다. 파격적이다. 읽을수록 낯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뜨거워진다. 갑자기 일본 지성계에 등장하더니 곧 ‘일본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게 된 사사키 아타루. 고등학교조차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지만 그는 혼자서 치열하게 동서양 고전들을 탐독하고 스스로 무지함을 깨우쳤다. 그의 글을 읽기 위해서는, 마치 놀이공원의 고난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긴장과 안도를 반복해야만 한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송태욱 옮김) 외에도 <야전과 영원>(안천 옮김), <이 치열한 무력을>(안천 옮김) 등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다. 그중에서 특히 읽는 맛이 제대로인 책은 역시 대표작이면서 ‘혁명으로서의 책 읽기’를 주제로 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다.
이 책은 지금의 치열한 무력의 시대에, 압도적인 현실에 짓눌린 억압의 시대에, 왜 손에 책을 집어 들어야 하는지를 역설하고 있다. 사사키 아타루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세상을 변화시켜달라고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것보다, 그 두 손으로 책을 들어 읽고 또 읽고, 고쳐 읽고 다시 고쳐 쓰는 행위 자체가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요즘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책을 읽으라니, 답답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사키에 의하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더욱 책을 읽어야만 한다. “질 들뢰즈의 강력한 말이 있습니다. ‘타락한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 정보 자체가 타락한 것이다’라는. 하이데거도 정보란 명령이라는 의미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들 명령을 듣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정보를 모은다는 것은 명령을 모으는 일입니다. 언제나 긴장한 채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누군가의 부하에게, 또는 미디어의 익명성 아래에 감추어진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의 부하로서 희희낙락하며 영락해가는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문장 아닌가! 최첨단 정보화 사회에서 우리는 정보의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던지는 ‘명령’에 순응해가고 있는지 모르는 일이다.
책을 읽는 행위가 위대한 이유는 그 자체가 혁명이고 또한 혁명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 무함마드, 니체, 도스토옙스키, 프로이트, 라캉, 버지니아 울프 등이 그랬다. 사사키는 ‘책읽기의 혁명성’을 납득시키기 위해 마르틴 루터를 소환한다. 마르틴 루터의 혁명은 단순한 ‘종교개혁’이 아니었다. 루터가 한 일은 성서를 읽고 번역하고 수없이 많은 책을 쓴 것이다. 세계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을 때, 루터는 세계의 근거이자 준거인 텍스트, 성서를 읽었다. 성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세계가 미쳐 돌아가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었고, 게다가 그 질서는 완전히 썩어있었다. 준거가 되는 성서에는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대주교나 주교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고, 그들의 명령이나 질서를 따라야만 한다는 근거도 찾을 수 없었다.
루터가 면죄부 판매에 항의해 독일 비텐베르크성 교회에 그 유명한 95개의 반박문, 의견서를 내붙이고 교황 세력과 대결해 새로운 세계를 연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지독할 정도로 읽고 썼던 루터의 행위가 당시 인쇄 출판 역사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16세기 초까지 독일어 서적 간행 종수는 단 40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등장하자마자 1523년에는 498종에 이릅니다. 그중 418종은 루터와 그의 적대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1519년 루터 책의 출판 부수는 독일 전체 출판물의 3분의 1, 1523년에는 5분의 2에 달했습니다. 좀 더 넓게 잡아도 1500년부터 1540년까지 독일의 전체 서적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다들 바쁘게 살아가느라 힘겹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사회, 세상을 한번 냉정하게 들여다보자. 추악한 권력형 비리들이 끊임없이 터지고, 대형 인재사고는 물론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로 인해 시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남북간에도 화해가 아니라 첨예한 긴장감만이 감돌고 있다.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지도자들의 의무이자 도리일 텐데, 오히려 그들이 국민들을 불안 속으로 떠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많은 우리들은 그저 침묵한 채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책을 읽지 않아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의란 무엇이고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거이자 준거인 텍스트를 멀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책 읽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 이 엄중한 진리를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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