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끝
만4살 3개월 배기 손자가
6개월 만에 외국에서 귀국해서 할아비와 나눈 말:
손자: “할아버지 늙었어.”
할아비: “왜? 어떻게 알아?”
손자: “얼굴에 점도 있어. 나중에 죽어.”
할아비: “내가 죽으면 ○○ 보고 싶어 어떻게 해?”
손자: “그럼 많이, 많이...”
많이, 많이 자기를 보고 죽으라는 말인지
오래 살라는 말인지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는데
두 가지 의미가 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것,
그 속에 쌓이는 그리움을
어떻게 풀어서 저장할 것인가?
추억은 추상명사이기에
희미해지는 시간 속의 의미일 뿐.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라지만
시간은 추상도 빛도 아니기에
거기에 새기는 손자와 할아비의 대화는
태양계를 지나 울티마 툴레 천체에
2019년 1월 1일에 도달한다는
뉴호라이즌스 탐사선만큼 아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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