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한국전쟁(7)

이윤진이카루스 2010. 7. 31. 15:17

로키산맥 출신인 해밀튼(Hamilton)은

몰래 들은 아버지의 말이 궁금하여

19년 미국 교사 생활을 떠나 이 땅에 왔는데

한국전쟁에 헌병으로 참전했던 아버지는

거기에서 사람들이 굶주린다고 말렸다,

전쟁이 얼마나 잔인한지

아예 군인이 될 생각을 말고

거기에 가지 말라고.

 

경기도의 어느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온통 빨간색 간판이 모두 이발소인줄 알고

여기서 머리 깎는 일은 너무 쉽다고,

한국은 과거의 그런 나라가 아니라고

미국에 소식을 전하고

일본에 무조건 적대적이던 아이들에게서

맹목적인 교육을 알아채곤 했다.

 

부대찌개를 troop soup라고 금방 알아채고

미군방송 이야기만 해도 얼굴이 경직되던

40세가 넘은 해밀튼은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하고는 싶지만 적당한 여자가 없다고 했다.

 

외로운 시간에 공원에 나가 앉아 있으면

힐끗거리고 손가락질 하고 수군거리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날 복도에서 해밀튼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는

아이에게 나는 일갈해버리고 그는 붉어진 얼굴을

어쩌지 못하고 처량한 눈초리로 나를 외면했다.

 

자신을 사랑하던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뜨고

한국에 있는 동안 아버지도 사망하여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돌아온 해밀튼은

어릴 적에 들은 부모님의 대화를 전해주었는데

헌병이었던 아버지는 한국 땅에서

여자를 지프차에 매달아 철조망으로 돌진하는 것을 보았다고.

 

여자를, 지프차에, 철조망으로?

피가 멈추는 듯 황급히 물었다:

누가? 그 여자는 누구였나?

모른다. 어릴 때 몰래 들은 부모의 대화일 뿐.

그 후 부친은 내가 군인이 되는 것을 막았다.

 

 

 

 

 

후기: 해밀튼은 한국에 1년 동안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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