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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오디세이 - 소크라테스가 일깨우는 '정의'

이윤진이카루스 2010. 9. 25. 18:06

정의롭게 살면 권력자에게 이익이 된다?
[고전 오디세이] ⑮ 소크라테스가 일깨우는 ‘정의’
한겨레 고명섭 기자 메일보내기
» 자크 루이 다비드의 1787년 작품으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려냈다. 그는 법을 어겨가며 탈옥을 감행하지 않고 담담하고 평온하게 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였다. 죽음은 그에게 최후가 아니라, 진정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참모습, 즉 이데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영혼의 해방이었다.

‘모든 통치자는 자기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든다. 그 법을 지키며 정의롭게 사는 약자는 결국 손해를 보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주장에 일갈한다. “제 이익에만 마음 쏟는 이는 강도일 뿐, 통치자가 아니라고.”

참담한 소문이 들린다. 착하게 살면 손해를 본다고. 성실하고 정직하게만 살다간 융통성이 없는 바보라는 딱지가 붙을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고. 적당히 얽히고설키며 너무 튀지 않게, 남들 하는 만큼 살짝 때 묻고 사는 게 무난하다고. 털어서 먼지 안 날 정도가 되면 오히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한다. 영리하게 챙길 것 잘 챙기는 게 삶의 지혜라는, 검고 좀 더러워도 고양이야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귀에 익은 속삭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벌어진 토론에서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를 상대로 당차게 주장한다. “한마디로 정의란 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정의롭게 살면, 나보다는 나보다 강한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나에게는 오히려 손해가 된다? “양을 치는 목동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가 양이나 소를 잘 돌보는 것이 과연 양을 위한 것인가요? 양이 토실토실 살이 오르면 누구에게 이익이 됩니까? 양에게 이익인가요? 아니지요. 당연히 목동에게 이익이 됩니다.

통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치자들은 절대로 약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법을 만들지 않습니다. 강한 자들이 법을 만드는 이유는 약하고 순진하고 올바른 사람들을 조종하며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지요. 그래서 약한 사람들이 그 법을 지키면, 강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반면, 자신들은 손해를 보며 행복에서 멀어집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세금을 낼 때, 정의로운 사람은 정직하게 세금을 다 내는 반면, 정의롭지 못한 사람은 속여서 내기 때문에 이익을 챙깁니다. 관직에 오를 때에도 정의로운 사람은 자기 집안일보다는 나랏일을 더 열심히 하기 때문에, 정작 자기 집안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공정하다보니 친척이나 친구들의 부탁도 거절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친한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사게 되지요.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은 그 반대지요. 올바르지 못한 짓을 서슴지 않고 행하면서 큰 행복을 누리는 반면, 다른 사람이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죄인으로 몰아붙이지요. 아시겠습니까? 내가 정의롭게 행동하면 나보다 더 강한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되고, 내가 정의롭지 못하게 행동하면 바로 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겁니다.”(<국가> I, 338c, 343b~344c)

재미있는 주장이다. 어느 국가, 어느 정치 체제에서나 법은 있기 마련. 그런데 그 법은 권력을 쥔 강자가 통치자로 군림하면서 세운 것이다. 이때 권력자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법을 세울 것이다. 약자의 행복과 이익은 강자의 관심 밖에 있다. 그러므로 법을 지키면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의 의도에 따르는 것이 되며, 따라서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 설령 그들이 많은 사람들을 의식해서 법을 공정하게 세웠다고 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강한 사람들은 법을 지키지 않고도, 마치 법 위에 군림이라도 하는 양, 법에 의한 처벌을 가뿐하게 피해나갈 수 있는 반면, 약한 사람들은 법을 어겼을 경우 가차 없이 엄격하게 벌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에는 법을 어기면 이익이 되며, 법을 지키면 손해가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욕망을 충족시키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각자 욕망을 채우려고 하다 보면, 갈등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더구나 한정된 양을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할 때, 서로 먼저, 더 많이 차지하려고 거칠게 다투고 싸울 것이다. 이때 인간은, 홉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에 대해 늑대가 된다(homo homini lupus).

곰곰이 따져본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 욕망을 조금씩 양보하여 권력자에게 맡기고, 그의 통제 아래 들어가 법과 원칙에 따라 사는 것이 전체적으로 더 낫다는 계산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은 근대 사회계약론의 논리가 플라톤의 <국가>에서도 울린다. 불의를 저지를 때 얻게 될 이익과 불의를 당할 때 입게 될 손해를 비교해보니 손해가 더 크다는 계산이 나오자, 사람들은 서로에게 불의를 저지르지 말자고 합의하고 법을 세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본성을 갖고 있으니 권력을 위탁받은 사람도 그럴 테고, 따라서 그가 법을 세울 때 자기에게 이익이 되게끔 조작할 것이다. 설령 그가 공정하게 법을 세운다 해도 그 법을 지키지 않으려고 하며, 안 지키고도 법에 의해 처벌이 되지 않게끔 손을 쓸 것이다. 본디 법이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일정 부분 제어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니만큼, 욕망을 채우려고 하다 보면 법과 부딪치게 되며, 따라서 법을 어기며 욕망을 채우되 법에 의해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셈법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결론은 뻔하다. 가장 지혜로운 처신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의롭게 보이면서, 실제로는 교묘히 법을 어기며 욕망을 채우며 이익을 챙기는 것. 단 불의를 저지를 때는 들키지 않도록 조심할 것. 혹시 들키면, 말로써 잘 둘러대고, 돈을 써서 회유하거나 힘을 써서 협박하여 처벌을 피할 것. 정의롭게 법을 지키며 건실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폼은 좀 나겠지만 실리가 없으니, 영리한 사람이 할 일은 아니다.

정의롭게 사는 건 별로 쓸모가 없다. 그런 삶이 좋다면, 왜 사람들이 틈만 나면 부정을 저지르며 불법을 일삼겠는가? 사람들이 정의롭게 행동하고 법을 지키는 까닭은, 잘못 행동하다 재수 없게 걸리기라도 하면 벌을 받거나 망신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만약 절대로 들키지 않고 불의를 저지를 수 있으며, 부정을 저지르고도 언제나 영원히 처벌을 면할 수 있다면, 과연 사람들은 정직하게 행동하며 정의를 추구할까?

문제들과 관련해서 플라톤은 ‘귀게스의 반지’를 소개한다. 옛날 뤼디아 땅에 목동이 있었다. 어느 날 양을 치고 있는데, 천둥 번개가 치더니 땅이 갈라졌다. 깜짝 놀란 그는 조심조심 갈라진 틈 안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청동으로 만든 말이 있었다. 작은 문이 달려 있어, 그 문을 열어 보니 큰 송장이 누워 있었고, 그 손가락에는 반지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살짝 빼서 가져 나왔다. 그런데 그 반지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반지에 달린 보석을 안쪽으로 돌리면 반지를 낀 사람이 보이지 않고, 바깥쪽으로 돌리면 다시 보였다. 그 반지만 있으면 원하는 때에 언제나 투명인간이 될 수 있었다.(II, 359c~316d)

자, 이제 이 반지를 여러분께 드릴 테니, 마음껏 상상하시라.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하시길. 여러분이 상상 속에서 행한 일들은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뿐인가? 혹시 다른 사람의 것을 몰래 가져오진 않았나? 흠모하던 사람을 건드리며 즐기진 않았나? 처절한 복수극은 얼마나 벌였나?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여러분이 저질러도 들키지 않고, 들키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이 된다면 저지를 일들이다. 여러분이 법을 세우고 집행하는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또는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부패하게 만들고 그 약점을 이용하여 맘껏 주무를 수 있을 만큼 많은 돈과 수완을 갖게 되었을 때, 여러분들이 저지를 일들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트라시마코스에게 소크라테스는 되묻는다. 의사가 진정 의사일 때,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자신에게인가, 아니면 그가 돌보는 환자에게인가? 만약 그가 환자를 위하는 마음보다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어 교묘하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가 의사인가? 의사의 탈을 쓴 강도가 아닌가?


» 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통치자나 정치가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들이 통치를 받는 사람들의 행복과 정의를 위해 법을 세우고 집행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에 더 마음을 둔다면, 그들은 진정 통치자도, 정치가도 아니다. 그런 가죽을 쓴 가장 위험한 강도다.

정의는 훌륭한 사람의 미덕이다. 정의로운 사람은 그 영혼이 참된 앎과 진정한 용기, 절제로 조화를 이루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정의로운 국가를 꾸리며 모두의 행복에 힘쓴다. 소크라테스는 정교하고 놀라운 논리를 통해 이 주장의 진정성을 증명한다. 책의 마지막 쪽을 넘기는 순간, 감동과 전율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리고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마음이 가득 먹먹해진다. 2500여년 전 고전 속에서 우리의 현재 모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읽어내기 때문일까?

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