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10) 빈 철로 위에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유리병에 사탕을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눈깔사탕과 셈베과자 따위가 진열되고 소주도 주전자에 쏟아 부어 팔았다. 외상으로 소주를 사 아비 심부름을 하며 비틀거리는 시간은 밤낮으로 지나갔다. 밀가루로 뽑아 갈대막대기로 말리던 국수는 오가며 훑어보는.. 습작시 2010.08.02
좋은 시절 늙은이가 되어서 시간이 나면 뒷산을 오르는데 어느 날 산을 내려오면서 동네 할머니를 만났다. 어디 갔다 오느냐는 물음에 산에서 걸었다고 했더니 그 때가 좋은 시절이란다. 다리 없는 사람들도 능선에서 삶을 느끼는데 등산을 포기한 몸은 먼 산을 바라보기만 하는지 눈물이 고여 있는 눈에 수정체.. 습작시 2010.08.02
진달래가 피면 지난날에 춘궁기가 있었는데 얄팍한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어느 새 갈무리된 곡식은 없어지고 긴긴 겨울밤이 시름에 겨웠는데 지붕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고 아직 싸늘한 바람이 몰려오는 개천에 버들강아지가 움트며 봄이 걸어왔다. 보리밭은 푸르러 풋바심은 꿈속이고 감자가 심어지지 않.. 습작시 2010.08.02
삶의 어느 순간에 길을 떠나며 산으로 들로 다니다가 골짜기로 들어갔다, 깊이 걸어 들어갔다. 어디까지 왔는지 모르는데 이제는 그냥 밀려간다. 끝없는 길에서 이러 저리 밀려 육체는 떠돌았다. 습작시 2010.08.02
무소유 스님의 입적 대학입학금을 달라고 아버지에게 갔다가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고 거절당한 여고생은 한국문학에서 걸작을 남겼고, 공납금을 빌리러 갔다가 거부당한 학생은 무소유라는 이념으로 불교의 거목이 되었다. 목표를 정하고 살아도 목표는 보이지 않고 종착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의식만 명료한 것은 산.. 습작시 2010.08.02
최영 장군 묘소에서 2010년 3월 12일 고양 대자산 아래 입춘이 지나고도 잔설이 남았고 성령대군의 능 옆에 소현세자의 아들 경안군의 무덤이 있는데 그 샛길로 산을 오르니 최영 장군의 묘가 있다. 여말의 충신으로 이성계 일파에게 죽으니 세상이 바뀌었음을 최영은 어찌 무시했는지... 수 백 년 세월이 흘러 모두 땅속에서.. 습작시 2010.08.02
살아있음은... 등댓불을 보면서 먼 항해의 길을 헤쳐 왔는데 등대를 세운 사람은 세상에 없고 불 밝히는 사람만 어둠을 사린다. 살아있음은 사라진 사람들과 사라지는 사람들의 덕택이고, 지난날이 선(善)과 어리석음으로 뒤엉켜 구분하기 어렵다면 또한 어리석기 때문이리라. 현실에 취한 자는 절망을 만나고, 과거.. 습작시 2010.08.02
기다림 하늘과 땅을 잊었다면, 우주를 망각하고 살았다면 무엇에 매몰되어 시간을 보냈겠는가? 공간을 날아가는 웃음소리에 삶이 그저 도깨비장난처럼 보이던 시절도 있다. 신(神)이 사람이면 정복자겠는가, 인자한 자이겠는가? 기다림이 눈으로 보면서 간직하려는 것이라면 실망의 세월이 이어지고, 시각이.. 습작시 2010.08.02
한국전쟁(9) 국가라는 허깨비를 믿어서 자신도 사나운 미치광이가 되어 농투성이가 기르던 닭을 잡아먹고 딸을 겁탈하며 희희낙락하던 때 산골로 도망간 백성에게 인민이라는 허깨비 이름으로 빨치산은 국가를 처형하자 반도는 눈물로 세월을 이어갔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제는 살이 떨리는 시간 속에 유전자.. 습작시 2010.08.02
의미를 위하여 어두운 우주에 빛이 나타나던 날 광합성으로 먹고 살 수 있어서, 생명은 시간과 함께 시작되었다. 공간은 태고부터 존재했지만 시간이 찾아오기까지 무의미해서 생명은 시간과 등식을 이룬다. 공간만으로 이루어진 우주는 외로워 시간은 소리 내고 생명이 떠든다. 한 생명의 가치는 쩨쩨하여 내려온 .. 습작시 2010.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