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스승’에서 풍기는 제국주의 악취 | |
후쿠자와 유키치 모든 글·발언 분석 ‘힘이 곧 정의’·‘민권보다 국권’ 등 주장 자유주의자 명성 뒤편 추악한 본모습 | |
최원형 기자 | |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야스카와 주노스케 지음·이향철 옮김 /역사비평사·2만3000원 일본 메이지 시대의 지식인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사진)는 ‘일본 근대의 스승’인가 ‘아시아 침략의 사상적 주범’인가? 이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일본 사이의 거대한 역사인식의 틈을 보여주는 질문이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의 지은이 야스카와 주노스케 교수는 일본 학계가 그동안 왜곡하거나 외면해 온 후쿠자와의 진면목을 낱낱이 밝혀내, 침략적 근대화의 발자취를 성찰 없이 받아들였던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를 사정없이 공격한다. 이 책은 1990년대 일본의 전쟁책임을 규탄하는 아시아의 목소리가 높아진 데 영향을 받아 2000년에 출간됐다. 본래 일국적 시각에서 후쿠자와의 교육사상을 연구했던 지은이는, 정년퇴임 뒤 시민운동에 뛰어들면서 30년 만에 후쿠자와의 모든 글과 발언을 다시 읽고 분석했다. “메이지 이래의 일본 근대화과정 자체를 재점검할 필요성이 있었고, 이를 위해 ‘메이지의 스승’인 후쿠자와 연구를 재검토해야 했기” 때문이다. ‘탈아론’ 등 침략전쟁의 사상을 북돋운 원흉으로 비난받지만, 일본에서 후쿠자와는 서양문명의 충격 속에서 일본을 주권적 국민국가로 만들기 위한 정신의 토대를 만든 위대한 사상가로 존경받는다. 최고액권인 만엔짜리 지폐에 그의 얼굴이 담긴 것도 그 때문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시민적 자유주의자의 전형을 보여준 사상가’라는 말로 압축된다. 그 근거로 쓰이는 후쿠자와의 가장 유명한 말은, 막부 말기 그가 써낸 <학문의 권유> 첫머리를 장식한 “일신(一身) 독립해야 일국(一國) 독립한다”는 말이다. 정치사상사의 석학으로 꼽히는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는 이에 대해 “개인적 자유와 국민적 독립, 국민적 독립과 국제적 평등이 완전히 같은 원리로 관철되고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그것은 후쿠자와의 내셔널리즘, 아니 일본의 근대 내셔널리즘에서 아름답지만 짧았던 고전적 균형의 시대였다”고 찬탄했다. 마루야마의 이러한 ‘시민적 자유주의자’로서의 후쿠자와 읽기는 일본 학계의 정설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후쿠자와의 모든 글과 발언을 살펴본 지은이는,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는 후쿠자와를 완전히 잘못 읽었다”며 마루야마가 보지 못했거나 외면했던 진실을 까발린다. 후쿠자와는 “국가를 위해서라면 재산뿐만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던져도 아깝지 않다” 등 민권에 바탕을 두지 않은 국가주의적 발언을 숱하게 쏟아냈다. ‘천부인권·인부국권’의 논리는 찾아볼 수 없어, 마루야마가 찬탄했던 시민적 자유주의자로서의 모습은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는 “개인의 자유독립과 일신독립을 아울러 달성하는 문명의 본지(本旨)”를 “다음 행보로 남겨두고 훗날 이루게 되리라”고 덧붙여, 국권론에 밀린 민권론을 차후의 과제로 남겨뒀을 뿐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 뒤로 후쿠자와는 ‘힘은 곧 정의’라는 노골적인 현실주의의 입장을 드러내며 일본의 침략을 적극적으로 고취하는 데 나섰다. 자유민권운동에 대한 맹렬한 비판, 중국인을 경멸하는 ‘창창 되놈’ 등 수많았던 아시아 멸시 발언, 조선 침략과 ‘천황 친정’에 대한 노골적인 주장, 언론인으로서 뤼순 학살사건에 대한 보도 은폐 등은 한결같은 침략적 제국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지은이의 메시지는, 초기 계몽기 후쿠자와와 침략적 제국주의자로서의 후쿠자와는 연속선 위에 있다는 것이다. 마루야마 등 기존 학계의 분석과 달리 초창기부터 후쿠자와는 국제관계를 ‘힘이 곧 정의’라는 노골적 약육강식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민권보다는 국권에 치중해 있었다. “압제도 내가 당하면 싫지만 남을 압제하는 것은 몹시 유쾌하다”는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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