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행복을 위하여

이윤진이카루스 2013. 1. 2. 23:42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려

뜬구름 잡듯이 세월을 보냈던 까닭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지나왔고

시간이 허망하게만 느껴지기 때문.

 

이제 도덕이란 추상을 붙잡아도

육체는 행복을 추구하여 슬그머니

엔트로피가 되어 물러가지.

 

그럼 겨우

행복과 도덕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인가.

사악하지는 않지만 불완전하다고 하면

이제 완벽을 위하여 어떻게 하나?

최고선인 자연 질서의 차선인 파생선이 되어

유아독존이라 하면,

열정 없이 업적도 없다 하면,

그게 한계고 인간 선언이겠지.

 

첫 번째 길은 감각의 세상이자 망상의 길,

두 번째 길은 이성의 지배이자 비판의 길,

영원한 것은 신(神)의 세상일 테지.

 

우리가 신(神)을 닮았을지 몰라도

신(神)은 우리를 닮지 않았다고…….

 

 

<후기>

칸트의 ‘최고선’은 감성적 내지 물리적 행복을 하나의 요소로 갖는 ‘가장 좋음’의 의미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칸트는 그러한 행복을 누리는 희망적인 세계가 없다면, “윤리성의 훌륭한 이념들은 찬동과 감탄의 대상들이기는 하겠으나, 결의와 실행의 동기들은” 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도덕적 행복’이란 “자기모순적인” 것으로서 엄밀하게 말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행복’이란 어디까지나 감성적인, “정념적인 쾌감”이고, 그것이 정념적인 한에서 그러한 쾌감이 예견될 때만 사람들이 의무를 행하도록 움직이는 것이 “자연질서”인데, ‘도덕적’이란 그런 쾌감을 고려함 없이 의무 수행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는 “윤리적 질서”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고선’의 한 요소로 꼽는 ‘행복’ 역시 분명 ‘감성적 만족’ 즉 ‘물리적 행복’을 뜻한다.

                  - 백종현, ‘칸트 이성철학 9서 5제’, 161-2쪽, 20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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