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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문명론의 개략(文明論之概略), 1권(巻之一) 서언(緒言)

이윤진이카루스 2012. 1. 18. 21:28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의 주요 저서인 문명론의 개략(文明論之概略)을 번역하면서 다음 사항을 참고하였음:

 

1. 번역에 사용된 원문은 경응의숙대학 출판부 2002년(慶應義塾大学出版 会,2002) 인터넷 본을 기준으로 하되 이와나미(岩波) 문고 2010년 1월 25일자 제 21쇄를 참고하였는데 이와나미 문고에 수록된 주석은 생략하였음. (주석의 한글 번역은 훗날의 과제로 남겨 둠.)

 

2. 본 서적을 번역하면서 참고한 저서는 고야스노부쿠니 지음, 김석근 옮김 의 ‘후쿠자와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정밀하게 읽는다’, 2007년 10월 12일, 역사비평사 발행판본 및 컬럼비아 대학 출판부 발행, 데이비드 A. 딜워스(David A. Dilworth)와 G. 카메런 허스트 3세(G. Cameron Hurst III)가 공동으로 번역하고 타케노리 이노키(Takenori Inoki)가 서문을 쓴 ‘An Outline of a Theory of Civilization’임.

 

3. 본 역자는 일본어를 전공한 적이 없어서 일본역사나 일본문학, 일본어에 조예가 깊지 않기 때문에 일본어 원서를 번역함에 많은 오류가 예상되어 독자들의 성찰이 요구됨.

 

2012년 1월 17일 역자 씀.

 

 

 

 

 

 

 

 

 

 

 

 

 

 

 

 

 

 

 

 

 

 

문명론의 개략

 

 

 

 

 

후쿠자와 유키치 저

 

 

 

1권

 

서언

 

 

문명론이란 인간의 정신발달을 논하는 것이다. 그 취지는 한 사람의 정신발달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정신발달을 한 데 모아 그 전체의 발달을 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명론, 혹은 그것을 많은 사람들의 정신발달론이라 부를 수 있다. 아마도 인간의 세상에서 살면서 부분적 이해득실에 가려져 자신의 의견을 오해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관습의 장구화에 이르면 자연적인 것과 인간의 행위를 구분할 수 없다. 자연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 실제로 관습이 되는 경우가 있다. 혹은 관습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반대로 자연스러운 것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 혼란의 때에 이르러 이치가 문란하지 않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문명에 대한 논의는 역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서양문명은 로마의 멸망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략 1천여 년 간 성장했다는 것인데 그 기원은 훨씬 더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일본도 건국 이래 2500년이 지나서 우리나라만의 문명이 스스로 진보하여 그 다다른 장소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서양의 문명과 비교하면 처지가 다른 곳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가에이(嘉永)년 중에 미국인이 오고, 이어서 서양 여러 나라와 통신 및 무역조약을 체결하는 데 이르니 우리나라의 국민이 처음으로 서양이 있는 것을 알아, 그 문명과 우리 문명의 모습을 비교하교 큰 차이가 있음을 알고, 갑자기 귀와 눈을 놀라게 하여 흡사 인심의 소란을 낳은 것과 같다. 물론 우리의 2500년 동안 세상의 평화로움과 어지러움, 흥망으로 인하여 사람을 놀라게 한 일이 없지는 않더라도 심하게 사람 마음의 내부에 침범하여 그 마음을 감동시킨 일은, 먼 예날, 유교와 불교를 중국으로부터 전수한 한 가지 일을 처음으로 하고, 그 후 특별히 요사이 외교로 으뜸이다. 더구나, 유교와 불교는 아시아의 요소를 전하여 아시아에 베푼 것이었다면, 다만 조악하고 정밀한 차이가 있을 따름이어서 그것에 접근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혹은 우리에게 새롭지만 기이하지는 않았다고 하는 것이 가능할지라도, 저 근년의 외교에 이르러서는 그렇지 않다. 지리적 지역을 달리하고, 문명의 요소를 달리하고, 그 요소의 진보를 달리하고, 그 진보의 정도를 달리해서 특수하고 다른 일에 봉착하여 별안간 가까이 서로 마주치는 일이어서 우리 국민에게는 그 일이 새롭고 진기한 것을 물론, 모든 사물을 보아서 기이하지 않은 것이 없고, 듣고서 괴이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을 비유하면 매우 뜨거운 불로써 매우 찬 물에 대는 것과 같아서, 인간의 정신에 소란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그 내부의 바닥을 뚫고 뒤집어놓는 소란을 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인심의 소동 사건의 흔적에서 나타난 것이, 몇 년 전의 메이지 유신이고, 그 다음이 번을 폐지하고 현을 둔 것(廃藩置県)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지만 이 사건들로써 중단할 수가 없다. 병마(兵馬)의 소동은 수년전에 있어서 이미 흔적이 없다하더라도, 인심의 소동은 아직도 예전과 같아서 나날이 더욱 심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마도 이 소란은 전국의 국민이 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분발(奮発)이다. 우리의 문명에 만족하지 못하고 서양의 문명을 취하려는 열의이다. 따라서 그 기약하는 바는 결국 우리 문명으로 하여금 서양의 문명과 같이 되도록 하여 그것과 나란하거나, 혹은 그것을 능가하는 데 이르지 못하면 멈추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리하여 저 서양의 문명도 지금 틀림없이 움직임 가운데 있어 날마다 달마다 진보하므로, 우리나라의 인심도 그것과 함께 움직여 끝까지 정지(停止)하는 기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실로 가에이(嘉永) 연중 미국인이 도래한 사건은 흡사 우리 국민의 마음에 불을 붙인 것과 같아서, 한번 타오르는데 다시 이것을 멈추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인심의 소란은 그와 같다. 세상 사물의 분쟁과 조잡한 일은 대부분 상상하기가 불가능한 것에 가깝다. 이때를 맞아 문명에 대한 논의를 세우는 도리를 문란하지 않게 하는 일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학자의 일에 있어서 지극히 크고 지극히 어려운 과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양 여러 나라의 학자들은 매일 새로운 이론을 주창하여 그 이론에 따라 나오면 따라서 새롭게 사람의 이목을 놀라게 하는 일이 많다고 하다라도, 천여 년의 발전으로 인하여 선인(先人)이 남긴 것을 전하여 그 유물을 갈고 닦는(切磋琢磨) 일로 인하여, 설령 그 이론이 신기해도, 다 같이 동일한 원리로부터 발생한 것이어서 새롭게 그것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것을 우리나라의 요즘 형편과 비교하니 어찌 같은 날의 이론이랴? 지금의 우리 문명은 이른바 불에서 물로 변했는데, 무(無)에서 유(有)로 변하는 것이어서, 갑작스런 변화는 다만 그것을 진보라고 말할 수 없고, 또는 처음 창조했다고 칭하는 것도 역시 불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그 논의가 지극히 곤란한 것도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학자들이 그 곤란한 과업을 맡는다 하더라도, 여기에 우연한 요행이 없지 않다. 그 순서를 말하면, 우리나라가 항구를 개방한 이래, 세상의 학자들이 빈번히 서양의 학문을 향하고, 그 연구하는 것이 원래 엉성하고 좁다(粗鹵狭隘)고 하더라도, 서양문명의 작은 부분을 어렴풋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또한 한편으로 이 학자인 사람은, 20년 전에는 순전히 일본의 문명에 빠져 다만 그 일을 듣고 보았을 뿐만 아니라, 현재 그 일을 맡아서 그 일을 수행하지 않는 자라면, 과거를 토론하는 데서 억측과 짐작(憶測推量)에 빠지는 일이 적지 않아서, 직접 자기의 경험으로써 그 서양의 문명을 참조하는 편리함이 있다. 그 한 가지 일에 대하여, 저 서양의 학자들이 이미 형태를 이루어 놓은 문명 속에 존재하면서 다른 나라의 형편을 짐작하는 것보다도, 우리 학자의 경험으로써 다시 확실해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학자는 요행하게도 그 실험하는 한 가지 일로써, 게다가 그 실험은 지금의 한 세대를 지나면 결코 다시 가능하지 않은 일이어서, 이때가 특별히 중요한 좋은 기회라고 말할 수 있다. 시험 삼아 보건대, 현재 우리나라의 서양학자파가 그 전년에는 전부 중국책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닌 경우가 없고, 전부 신도(神道)와 불교를 믿지 않는 경우가 없다. 봉건의 귀족이 아니며 봉건의 백성이다. 마치 한 몸(一身)으로써 두 가지 삶을 거치는 것 같고 한 사람으로써 두 개의 몸이 있는 것 같다. 두 가지 삶을 서로 비교하고 두 개의 몸을 서로 비교하여, 그 전 삶과 전 몸에 이해한 것으로써 그것을 지금의 삶과 지금의 몸에 이해하여 서양의 문명에 비추니, 그 모양과 그림자의 상호간에 반사하는 것을 보아 과연 어떤 모양을 만들 수 있을까? 그 이론을 반드시 확실히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희미하게 서양학에 대한 소견으로써, 감히 스스로 천박하고 열등함을 돌아보며 이 책자를 저술하는 것을 맡아, 직접 서양 여러 학자들의 원서를 번역하지 않고, 다만 그 줄거리(大意)를 짐작하여 그것을 일본의 실정에 참고해서, 우리들이 틀림없이 얻었는데 다시 후세 사람들이 얻을 수 없는 좋은 기회의 이점이어서, 지금의 소견을 남겨서 미래의 비고에 이바지하려는 작은 뜻일 따름이다. 단지 그 논의의 엉성함(粗鹵)에 오류가 많은 것은 원래 스스로 뉘우쳐 고백하는 것(懺悔白状)이어서, 특별히 원하는 바, 후세의 학자들이 크게 공부하는 일이 있어, 철저히 서양의 많은 책을 읽고 철저히 일본의 사정에 정통하여, 점점 소견을 넓히고 점점 의견을 정밀하게 하여, 진실로 문명에 대한 전체적인 큰 토론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을 저술하여, 그것이 일본 전국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기를 기대하고 희망한다. 나도 역시 아직 나이가 늙지 않아서, 훗날 반드시 그 큰일이 있을 것을 기다려, 지금부터 다시 공부하여 조금 보탬이 되는 일을 즐길 따름이다.

책 가운데서 서양의 여러 책을 인용하여 그 원문을 직접 번역했다는 것은 그 저서의 이름을 기록하여 출전(出典)을 명확히 했다하더라도, 오직 그 큰 의미를 뽑아 그것을 번역했노라, 또 여러 책을 참고하여 그 근본적인 의미(趣意)가 있는 곳을 찾아서, 그 의미에 의거하여 저서의 이론을 서술했던 것은, 일일이 출전을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비유하건대 음식을 먹고 그것을 소화시키는 것과 같다. 그 물건은 외부의 물건이더라도, 한번 나에게 섭취되면 스스로 나의 몸 안의 물건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책 가운데서 드물게 좋은 설명이 있으면, 그 좋은 설명은 나의 좋은 설명이 아니고, 음식이 좋은 이유도 알 수 있다.

이 책을 저술하는 것을 맡아, 때때로 동료와 계획을 세우고 혹은 그 의견을 물어, 혹은 그 일찍이 읽은 책 중에서 논의를 듣고 도움을 받은 일이 적지 않다. 그 중 오바타 도쿠지로(小幡篤次郎) 군에게 특별히 원고검토를 성가시지만 바르게 다듬는 것을 요구하여, 크게 이론의 가치를 높인 일이 많다. 메이지 8년 3월 25일, 후쿠자와 유키치 씀.

 

 

 

 

 

 

 

 

 

文明論之概略

 

 

 

 

 

福沢諭吉著

 

 

巻之一

 

緒言

 

 文明論とは人の精神発達の議論なり。其趣意は一人の精神発達を論ずるに非ず、天下衆人の精神発達を一体に集めて、其一体の発達を論ずるものなり。故に文明論、或は之を衆心発達論と云ふも可なり。蓋し人の世に処するには局処の利害得失に掩はれて其所見を誤るもの甚だ多し。習慣の久しきに至りては殆ど天然と人為とを区別す可らず。其天然と思ひしもの、果たして習慣なることあり。或は其習慣と認めしもの、却て天然なることなきに非ず。此紛擾(ふんぜう)雑駁(ざつぱく)の際に就て条理の紊れ(みだれ)ざるものを求めんとすることなれば、文明の議論亦難しと云う可し。

 今の西洋の文明は羅馬(ろーま)の滅後より今日に至るまで大凡そ一千有余年の間に成長したるものにて、其由来頗る久しと云う可し。我日本も建国以来既に二千五百年を経て、我邦一己の文明は自ずから進歩して其達する所に達したりと雖ども、之を西洋の文明に比すれば趣の異なる所なきを得ず。嘉永年中米人渡来、次いで西洋諸国と通信貿易の条約を結ぶに及んで、我国の人民始て西洋あるを知り、彼我の文明の有様を比較して大に異別あるを知り、一時に耳目を驚かして恰も人心の騒乱を生じたるが如し。固より我二千五百年の間、世の治乱興廃に由て人を驚かしたることなきに非ずと雖ども、深く人心の内部を犯して之を感動せしめたるものは、上古、儒仏の教を支那より伝へたるの一事を初と為し、其後は特に輓近の外交を以て最とす。加之、儒仏の教は亜細亜の元素を伝えて亜細亜に施したることなれば、唯粗密の差あるのみにて之に接すること難からず。或は我のためには新にして奇ならずと云ふも可なりと雖ども、彼の輓近の外交に至ては則ち然らず。地理の区域を異にし、文明の元素を異にし、其元素の発育を異にし、其発育の度を異にしたる特殊異別のものに逢ふて頓に近く相接することなれば、我人民に於て其事の新にして珍しきは勿論、事々物々見るとして奇ならざるはなし、聞くとして怪ならざるはなし。之を譬へば極熱の火を以て極寒の水に接するが如く、人の精神に波瀾を生ずるのみならず、其内部の底に徹して転覆回旋の大騒乱を起さゞるを得ざるなり。

 此人心騒乱の事跡に見はれたるものは、前年の王制一新なり、次で廃藩置県なり。以て今日に及びしことなれども、是等の緒件を以て止む可きに非ず。兵馬の騒乱は数年前に在りて既に跡なしと雖ども、人心の騒乱は今尚依然として日に益甚しと云ふ可し。蓋し此騒乱は全国の人民文明に進まんとするの奮発なり。我文明に満足せずして西洋の文明を取らんとするの熱心なり。故に其期する所は、到底我文明をして西洋の文明の如くならしめて之と並立する歟、或は其右に出るに至らざれば止むことなかる可し。而して彼の西洋の文明も今正に運動の中に在て日に月に改進するものなれば、我国の人心も之と共に運動を与にして遂に消息(停止)の期ある可らず。実に嘉永年中米人渡来の一挙は恰も我民心に火を点じたるが如く、一度び燃へて又これを止む可らざるものなり。

 人心の騒乱斯の如し。世の事物の紛擾雑駁なること殆ど想像す可らざるに近し。此際に当て文明の議論を立て条理の紊れざるものを求めんとするは、学者の事に於て至大至難の課業と云ふ可し。西洋諸国の学者が日新の説を唱えて、其説随て出れば随て新にして人の耳目を驚かすもの多しと雖ども、千有余年の沿革に由り先人の遺物を伝へて之を切磋琢磨することなれば、仮令ひ其説は新奇なるも、等しく同一の元素より発生するものにて新に之を造るに非ず。之を我国今日の有様に比して豈同日の論ならんや。今の我文明は所謂火より水に変じ、無より有に移らんとするものにて、卒突の変化、啻に之を改進と云ふ可らず、或は始造と称するも亦不可なきがごとし。其議論の極て困難なるも謂れなきに非ざるなり。

 今の学者は此困難なる課業に当たると雖ども、爰に亦偶然の僥倖なきに非ず。其次第を云へば、我国開港以来、世の学者は頻に洋学に向ひ、其研究する所固より粗鹵(そろ)狭隘なりと雖ども、西洋文明の一斑は彷彿として窺ひ得たるがごとし。又一方には此学者なるもの、二十年以前は純然たる日本の文明に浴し、啻に其事を聞見したるのみに非ず、現に其事に当て其事を行ふたる者なれば、既往を論ずるに憶測推量の曖昧に陥ること少なくして、直に自己の経験を以て之を西洋の文明に照らすの便利あり。此一事に就いては、彼の西洋の学者が既に体を成したる文明の内に居て他国の有様を推察する者よりも、我学者の経験を以て更に確実なりとせざる可らず。今の学者の僥倖とは即ち此実験の一事にして、然も此実験は今の一世を過れば決して再び得べからざるものなれば、今の時は殊に大切なる好機会と云ふ可し。試に見よ、方今我国の洋学者流、其前年は悉皆漢書生ならざるはなし、悉皆神仏者ならざるはなし。封建の士族に非ざれば封建の民なり。恰も一身にして二生を経るが如く一人にして両身あるが如し。二生相比し両身相較し、其前生前身に得たるものを以て之を今生今身に得たる西洋の文明に照らして、其形影の互に反射するを見ば果して何の観を為す可きや。其議論必ず確実ならざるを得ざるなり。蓋し余が彷彿たる洋学の所見を以て、敢て自から賎劣を顧みず此冊子を著すに当て、直に西洋緒家の原書を訳せず、唯其大意を斟酌(しんしやく)して之を日本の事実に参合したるも、余輩の正に得て後人の復た得べからざる好機会を利して、今の所見を遺して後の備考に供せんとするの微意のみ。但其議論の粗鹵にして誤謬の多きは固より自から懺悔白状する所なれば、特に願くば後の学者、大に学ぶことありて、飽くまで西洋の諸書を読み飽くまで日本の事情を詳にして、益所見を博くし益議論を密にして、真に文明の全大論と称す可きものを著述し、以て日本全国の面を一新せんことを企望するなり。余も亦年未だ老したるに非ず、他日必ず此大挙あらんことを待ち、今より更に勉強して其一臂の助たらんことを楽しむのみ。

 書中西洋の諸書を引用して其原文を直に訳したるものは其著書の名を記して出典を明にしたれども、唯其大意を撮て之を訳する歟、又は諸書を参考して趣意の在る所を探り、其意に拠て著書の論を述べたるものは、一々出典を記す可らず。之を譬へば食物を喰て之を消化したるが如し。其物は外物なれども、一度び我に取れば自から我身内の物たらざるを得ず。故に書中稀に良説あらば、其良説は余が良説に非ず、食物の良なる故と知る可し。

 此書を著はすに当り、往々社友に謀て或は其所見を問ひ、或は其嘗て読たる書中の議論を聞て益を得ること少なからず。就中小幡篤次郎君へは特に其閲見を煩はして正刪(せいさん)を乞ひ、頗る理論の品価を増たるもの多し。明治八年三月二十五日、福沢諭吉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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