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안길 그림자는 사라지고 발자취도 지워졌다. 휘돌아 쓸려가는 개울물에 발을 담갔던 기억들은 바다로 흘러내려 세상의 저편에서 퇴색한 사진으로 남았다. 시간의 십자로에서 태초의 세포를 붙잡고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은 당신 것일 따름이다. 바다를 들이마시든 하늘을 날아 사라지든 누가 따라오려는가?.. 습작시 2010.08.01
비가 온 뒤 산행 거칠게 내리던 비가 그친 후 산속의 좁은 길에 물이 넘쳐나고 숲은 증기를 뿜어내어 안개가 서린다. 움직임보다 서있기를 선택한 식물은 빗방울이 떨어지면 모아두고 홍수가 덮치면 뿌리와 몸으로 뿜어내며 세상에 몸을 맡긴 채 주시만 하고 있다. 흙탕물이 넘치는 개천을 떠나 산을 택한 까닭은 서있.. 습작시 2010.08.01
언어의 반향 언어를 던지면 뒤틀리고 납작한 모양이 되어 창문에서 튀어 돌아오지만, 그런 세월이 얼마나 갔는지 무한히 큰 유리창은 투명성도 사라지고 갖가지 춤을 추며 다가왔다. 이 색깔을 해석해보시오, 저 춤사위를 짐작해보시오. 당신이 내놓는 단어 속에 얼마나 큰 공간이 메아리치는지 시간에 띄워보시오.. 습작시 2010.08.01
기도는 기도는 무능한 자의 소망일지도 모르지만 유능한 자의 능력을 알지 못하여 성당에서 묵도하는 일이 잦다. 돌아가신 이를 생각하고 살아온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침묵으로 생각해본다. 늘 기도는 그저 이렇게 해달라는 간구로 끝나지만 간혹 이대로 세상을 떠나도 좋다는 느낌도 든다.. 습작시 2010.08.01
선유동을 지나며 선유동 가는 길은 차도에서 고개를 넘는데 마을이 있으리라는 느낌도 사람이 살리라는 생각도 아득하다. 짙푸른 6월말의 녹음 속에서 좁은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내리면 녹음에 맴돌던 고요가 찡 울리고 산딸기를 따먹고 내려간 길에는 밭과 논이 펼쳐졌다. 돌아나오려면 어찔한 더위 때문에 선유천 개.. 습작시 2010.08.01
꿈길 꿈을 따라가는 까닭은 외길이어서이다. 의식(意識)의 외피(外皮)를 희롱하는 저편 우주는 눈알을 굴린다. 사각사각 보인다, 들린다? 공간이 수축하여 시간을 잡아먹어 버리고 꿈은 조각이 나며 불씨가 되어 흩어졌다. 긴 침묵이 흐르고 꿈이 태어난다면 길을 따라 걷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습작시 2010.08.01
지리산 지리산이 걸어오다가 경망스런 늙은이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서버렸다고 노래하면 얼마나 기다려야 산은 다시 움직이는가? 숨을 죽이고 기다리느니 능선을 타다가 녹아내리는 생명이 되리. 소리치는 자와 노래하는 시인은 골짜기에서 서로 입을 열고 바람을 타고 오른다. 습작시 2010.08.01
양지와 어둠 햇빛이 숨은 밤 뒤척거리다 달마저 지나가고 시간에 부대끼는데 홀로 있다. 양지에 살았지만 어둠에 머무르면서 육체가 숨을 쉰다. 빛과 어둠이 오가는 시간, 기대하는 것만 남고 그리움은 색이 바랬다. 습작시 2010.08.01
신두리 모래언덕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 모래가루가 포구에 날아와 산을 만들고 식물이 뿌리를 내렸다. 바다에서 스멀거리던 게와 조개가 소금물에서 기어 나와 육지를 탐험하던 시간은 땅에서 불꽃으로 타올랐다. 사랑을 모른다면, 생명을 팽개친다면 해안을 두드리는 파도와 지평선 넘어 지는 해는 무엇 때문인가? .. 습작시 2010.08.01
모든 것을 주고 당신이 몸을 던져 세상을 뜬 후 국화 한 송이도 놓지 않았고 엎드려 절도 하지 않았소. 움직이지 않는 자에게 보화와 향기가 무슨 소용이며 되돌아온 명성이 무엇이란 말인가? 고인(故人)을 추하게 하는 일보다 타매하던 내 몸을 뒤돌아보면서 원칙이라는 핑계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유토피아로 가는 .. 습작시 2010.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