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396

(습작시) 그림자처럼

그림자처럼 세월이 흘렀으니 열정보다 이성을 따라야지. 나서면 인간 활동이 위축되고 후퇴하면 내가 살지 못하니 그냥 조용히 홀로 창조의 길로 간다. 무엇을 창조할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면 우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무한한 시간이 흘렀을 텐데 매일 일어나는 사건을 세밀히 보라고. 나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해하려고 노력이라고 하겠는가, 외로움의 길에 놓인 존재의 의미를 언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저질러졌던 저 많은 오류가 열정과 육체 때문이었다니, 살고자 하는 몸부림 때문이었다니. 세상에 인간의 오류가 없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정당화되지는 않지만 오류는 불가피한 것이라면 어느 선에서 오류가 용서되는가. 법률이라고 말하겠지, 당신은 그런데 법률조차도 오류일 수 있지. 대안이 없으니 법률로 선..

습작시 2023.08.20

시간을 먹는다 (습작시)

시간을 먹는다 이리저리 쪼개며 시간을 먹어치운다, 지랄총량법칙에서 야금야금 없애면 마지막에 없어지는 것은? 지랄은 동물이고 죄짓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지. 불행이 아니고 다행일 텐데 동물에게 명상이나 참선이 없기 때문이지. 신호는 동물도 보내고 기초적인 표현도 내놓지만 왜 그럴까 설명하는 존재는 인간뿐 지적하고 항의하는 능력은 더욱 인간의 몫이지. 아테네의 현인처럼 육체는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늦었을까 다시 태어날까, 명상의 시간을 통하여 참선과 침묵의 동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동물에게 무조건이지만 이제 인간에게 동물의 기간이 지나면 조건이 된다. 늙으면 모두 필요하지 않으니 혼자 살아라? 예수와 석가모니의 고독은 최후까지 남아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지 않았던가. 혼자 살아갈만큼 현명하냐고, 고독이 죽음..

습작시 2023.08.13

신을 창조하고

신(神)을 창조하고 신(神)이 무섭다면 아폴론처럼 천둥번개고 생사여탈권을 쥔 아버지일까. 신(神)이 자비롭다면 부처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미소만 짓는 어머니일까. 아무튼 세상을 살아가자면 공포와 편안함이 존재할 텐데 그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고? 부모가 없는 고아는 누가 공포이고 누가 편안함인가. 세상이 그를 기른다면 세상은 차갑고 따뜻한 음지와 양지로 대화 없는 시공간이지, 창조 없는 무료함이지. 당신들이 신(神)을 창조하고 다시 그를 찾아 간구한다니 회고의 시간이 온다, 어리석은 세월이 흐른다.

습작시 2023.01.19

존재와 시간

존재와 시간 시간을 접었더니 존재가 사라졌고 암흑이 되었다. 시간을 폈더니 존재가 나타났고 빛 속에 움직였다. 시간을 접고 펴는 자가 누구인가, 인간도 그 일부인가, 아니면 그저 인간의 창조물인가? 시간도 휜다는 블랙홀에서 누가 시간을 휘게 만드는가, 시간이 휘면 그 속의 생명체는 어떻게 되나? 휩쓸려갈 텐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걱정하지 말라고, 블랙홀에 가기도 전에 인간의 시간이 영원히 접히기 때문에 의미가 사라진다. 누가 염려할까, 시간이 접히든 펼쳐지든. 영원한 것은 블랙홀이고 인간이 발견한 것일 뿐 영원한 길로 갈 수 없다, 휜 시간으로 갈 수 없다. 시간을 접고 펼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초인일 터인데 초인은 사람이 아니겠지, 인간사회의 가치에 목매는 육체의 존재가 아닐 테지, 자기 ..

습작시 2022.10.10

(습작시) 젊음과 비잔티움

젊음과 비잔티움 어린 시절에는 태양을 쫓아다니면서 음지가 보지 않더니 늘그막에 태양이 나를 쫓아 오면서 빠르게 추격해오더라. 세월 속에서 녹아가지만 삶이라는 태양에서 살았다고,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말할 것인가? 젊음의 땅을 떠나 지혜의 도시 비잔티움을 찾았던 예이츠는 지혜를 발견했다고? 괴테의 마지막 말, ‘내 눈에 빛을...’의 의미를 깨닫기까지 무수한 세월이 흘렀는데 공간도 함께 지나갔다.

습작시 2022.01.31

(습작시) 우리의 세월

우리의 세월 새해가 밝았다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지나온 세월처럼 미래도 다가오지만 무궁한 시간에서 돌아다니고자 했지. 불가능하다지만 세상에 가능한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우리의 간격은 멀고도 가깝지. 순간을 이으면 영원이 될 터인데 연결고리에 무수한 오류가 끼어들어 피할 수 없어 즐기고 살자니 시간 속에 뒤돌아보면 오류 때문에 종말을 볼지도 모르지. 잊으려 해도 세월 속에 응고되어 뇌리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 속에서 무너지는가? 새해에는 작별의 안녕으로, 세밑에는 만남의 시작으로 세월을 거꾸로 살자고 하는데 올해 예수 탄생 몇 년이 되었고 턱도 없이 무슨 동물의 해라니 의미를 우리의 간격에 띄운다.

습작시 2022.01.09

존재와 시간

존재와 시간 따라오는 세월 앞질러가는 시간 존재를 데려가는... 자연의 법칙이 4계절이라면 겨울만 있고 여름만 아는 사람에게도 자연의 법칙이라고? 영원히 움직이는 것은 없다고 사람도 그래서 자연 속에 살지. 그리움이 사치일지도 모르고 애착도 허망할 테지만 우주에서 빛나는 별이 아쉽지. 어리석음에 물든 세월이 너무 후회스러워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시간을 뭉개버리려는데 지구에서 태어난 생명이 우주를 어찌 알겠냐던 칸트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구나 외롭고 모두가 슬프지만 애써 살아가기에 망각의 강물에서 흐르면서 광증으로 타오르지.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막연히 쳐다보는 하늘은 언제나 대답하지 않고, 나는 아직 존재하지.

습작시 2021.08.21

120년을 살려면

120년을 살려면 그대가 빛나지 않으면 나의 빛은 암흑에서 오겠소? 모세와 함께 120세를 살았다는 바빌론에 유폐되었던 랍비 힐렐의 말처럼 다른 인간이 없으면 우주 어디에서 풍요로운 삶이 떨어질까.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에서 바깥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의 족쇄는 자기들끼리 물고 뜯다가 끝난다는 것인데 우주도 모르고 풍요도 알지 못하는 동물이지. 동굴 속 사람에게 그나마 인간이어서 가능태가 있으니 침묵하고 지나가려오, 세월 속에 띄워 보내는 게 약일지도 모르니. 행복은 끝이 있으니 부디 그렇게 사시고, 세상에 끝나지 않는 게 어디 있겠소? 현자는 바래는 빛을 볼 수 있고 어리석은 자의 눈에는 무엇이 가득하겠소?

습작시 2021.08.05

자아를 찾아서

자아를 찾아서 식물이 아니라 움직이는 동물인데 마늘과 쑥을 지겹게 먹고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신화에서 사람이 된다는 게 어렵지. 사람, 동물들이 모두 수행하는 행위만으로 산다고? 지렁이처럼 먹이를 찾아서 앞뒤로 움직이면서. 인간의 역사는 불가능을 극복한 역사여서 에베레스트에서 얼음덩어리가 되고 최초로 북극해에 가서 돌아오지 못했지. 지혜를 찾아 비잔티움으로 떠났던 시인은 푸른 고등어가 뛰노는 지중해에서 삶의 근거를 찾았던가? 구도의 길을 찾아 해외로 돌아다녔던 각산 스님은 고향에 돌아오니 길이 보였다는데 깨어있되 고요하고 고요하되 깨어있음(소소영영[昭昭靈靈])으로 왜 고요해야 하고, 무엇에 대하여 어떻게 깨어있으라는 말인지 스님은 다시 길을 떠나야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보..

습작시 2021.07.06

모두 혁명을 꿈꾼다

모두 혁명을 꿈꾼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물질뿐이라고 인간정신조차도 머릿속에 있는 물질이어서 유물론을 안고 가겠지. 찰나에 지나가는 삶이라서, 유위(有爲)는 미리 계획된 것이라서 다만 정신만 남는다면 유심론을 환영하겠지. 두 가지를 모두 취하면 2차원의 세상에서 사는데 거기서 전개되는 3차, 4차원... 세상이라니 끝도 없는 행렬을 따라가네. 이념은 끈 떨어진 연처럼 허공에서 헤매다가 추락하겠지만 남기려는 게 무엇인지... 가슴에 사랑을 품으면서도 흥분하지 않으면 합리성에 닿을 수 있겠지. 하지만 얼마나 험난하고 먼 길을 가야 삶의 빛을 볼 수 있겠는가? 프랑스 혁명은 로베스피에르의 손에 피를 묻히고 열정을 쫓던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메리카에서 마구 무기를 휘둘렀지. 후기: 이념적 혁명은 합리성에 도움이 ..

습작시 2021.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