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396

삶이 지겹다고...

삶이 지겹다고... 네가 발광하는 까닭은 삶이 너무 짧고 권태롭고 끝장이 아스라이 느껴지기 때문일 테지. 그래서 세상에는 권력의 끝이 무엇일지 아련히 알지만 미치지 않고는 살아갈 즐거움이 없다고 인간은 횡포의 길에 빠지겠지. 살아가노라면 무지개도 보이고 비구름도 보이는데 그것들도 지나가는 모습들일 뿐이라면 나는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어느 철학자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무(無)에서 시작할 수 없기에 독단으로 시작하는 것인데 그것은 오래가지 못하니까, 변화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블랙홀에 빠지면 녹아 없어지지만 화이트홀도 있어서 회생한다고? 인간의 세상은 그저 그런 것이라면 빛나는 지성을 발견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이 빛난다고? 별과 은하수와... 인간? 단테의 말처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습작시 2021.06.15

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보는가 민코프스키는, ‘내가 여러분 앞에 놓고 싶은 시공간은... 근본적이다. 그리하여 공간 자체로는 그리고 시간 자체로는 단순한 그림자들로 사라질 운명이고 일종의 두 가지의 통합만 독립적인 실재를 보전한다’라고 노래했다는데... 그대는 시공간이란 구체적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임을 아는가? 보이지 않고 오직 두뇌 속에서만 작동하는 추상의 날개를 누가 타고 우주로 오른다는 말인가. 그럼 저 시각의 즐거움을 향유하고도 시간이라는 추상에 녹아버리는 구체적 세상에서 우리가 얻는 쾌락이란 인간의 번성을 위한 것일 텐데 그게 번성이라고, 번영을 위한 길이라고 그대는 장담하오? 아인슈타인이 ‘나의 연필은 나보다 영리하다’고 고백했을 때 그는 연필을 보고 있었소? 음, 착시현상이라니... 그 현상으로부터 자유로..

습작시 2021.06.09

인간의 한계

인간의 한계 “어리석은 영혼, 나를 전복시키려고 해? 내가 전복되면 너도 몰락이지.” 육체의 노래를 읊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말에서 독배를 마시고 쓰러진 사람과 화형으로 흩어진 이념의 발자국을 추적하면 얼마나 쓸쓸한가?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고 그래서 영원히 우리 기억에 남았겠지만 누가 인간의 본성을 포기하는가? 우리는 홀로 사라진다고 몇 번이고 되뇌고 혼자 가는 길에 동반자는 없다고 다짐해도 또한, 쓸쓸하지 않은가? 젊음이 기만인 까닭은 외로움을 모르기 때문이고 늙음이 환상인 이유는 고독을 넘지 못함이라면 인간의 세상에서 너와 내가 분명히 다른 까닭이 무엇일까? 후기: 이 논지를 언명하면서 나는, 과학적 활동으로부터 과학-외적 가치들을 추방하는 것이 실제로 불가능하다고 말..

습작시 2020.10.11

과거로 돌아가려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고독이라고? 그럼 왜 고독한 것일까. 지나온 과거 속에서 끈적거리는 혈액처럼 달라붙는 삶은 뒷모습, 종교인들이 죄악이라고 소리치며 시간에 매질할 때 두려움에 떨다가 다가오는 위안? 누구나 오류를 저지르기에 서로 용서하자는 어떤 이에게 용서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하냐고 되물어 보았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용서하면 사회 체제가 무너진다는 사람은... 시간의 화살처럼 세상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정태적이 아니라 과거로도 돌아갈 수 있는데 물리적 세상은 그러지 못해도 우리의 정신은 돌아갈 수 있지. 다만 무엇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는지? 후기: 그러나 상식은, 흔히 옳을지라도 (그리고 특히 자체의 실재론에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바로 상식이 틀렸을 때 실제로 사물들이 흥미롭게 ..

습작시 2020.09.22

그리움

그리움 행위와 결과가 늘 초월 되는 것이라면 인간이라는 실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이라고, 황금, 권력이라고? 산사를 찾아 떠난 구도자는 세상 회피가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을 자신의 실존으로 생각할까? 부처마저 버려야 하는 까닭이 그것 또한 행위와 결과이기 때문이고, 버린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을 채우는 것은 바람 소리와 적막함 뿐일까? 나는 누구이고 너는 어째서 세상에 존재하는가? 존재하는 것에게 물어도 그 답변 역시 초월의 대상일 뿐 장구한 세월에 남은 것은 기다림인데 무엇을 기다리는지, 그리움인데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판도라 상자처럼 최후에 나타나는 것이 희망이듯 절망의 강을 건너 시간의 흐름을 잊으면 그게 빛나는 순간들일 테지.

습작시 2020.08.14

살구 줍기

살구 줍기 역사가 반복되는 게 아니라 역사의 추세가 반복된다는데 그런 추세는 인간에게만 해당한다면, 다시 말해서 인간만 추세를 만든다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인간에 의한 우주인가? 어린 시절에 살던 집에는 덩굴장미가 앞마당에 피고 뒷마당 커다란 살구나무가 여름이 되면 노란 참살구를 떨어뜨렸지. 비바람이 훑고 간 밤이면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새벽에 찾아간 살구나무 아래 검붉은 흙 위에 흐드러지게 널브러진 노랑 살구들. 어머니가 세상을 일찍 뜨고 셋방을 전전하면서 덩굴장미도 살구도 추억 속에만 남았는데 그 을씨년스러운 세월 속에서 푸르른 젊음이 탈색되며 지나갔지. 시간이 흐르면 살구는 더는 보이지 않고 푸르른 나뭇잎이 무섭게 짙어지고 기이한 생각에 나무만 보다가 수십 년 세월이 흘러 하늘도 보고 우주도 생..

습작시 2020.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