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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이해 못하는 사람과 모두 이해하는 사람

강연을 이해 못하는 사람과 모두 이해하는 사람 강연이 끝난 후 또 다른 학생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닐 반면 한 학생은 모든 단어를 이해했다는 편안한 느낌을 지니고 떠날 것이라고 나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닐 학생은 왜 강연을 이해하지 못했는지를 말할 수 있어서 강연자가 이해한 것보다 더 깊은 이해를 보일지도 모르는 반면 모든 말을 이해했다는 편안한 느낌을 지니고 떠날 학생은 강연의 내용에 대하여 비평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 번째 학생은 강연을 이해하지 못한 학생의 문제를 심지어 해결할 것이다.ㅡ 칼 포퍼 저, 아르네피터슨 편집,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2007년, 217쪽 ㅡ

비(非)-파르메니데스적 경제학으로부터 나온 교훈

33 비(非)-파르메니데스적 경제학으로부터 나온 교훈자체가 지닌 원래 파르메니데스적 강령을 포기함에 의하여 주요 발전을 이룩하는 최초의 과학은 경제학이었다고 나는 아마도 간단하게 언급할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적 경제학은, 모든 경제적 교환이 제로-섬 게임이라는 교설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과 나 사이의 모든 교환에서 당신의 이익은 틀림없이 나의 손실이다. 이 원시적 이론은, 아마도 ‘부(富)의 보존 원리’로 지칭될 것에 근거하는데, 중상주의(重商主義: mercantilism)의 근간이었다. 그것은 자본가들 사이에서 부의 축적이나 증가가 노동자들 가운데서 불행의 증가에 의하여 틀림없이 일치된다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뿌리에 놓여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자신의 교설 중에서 이 정치적으로 가장 혁명적이고 중요한 ..

맥스웰의 도깨비

22 맥스웰(Maxwell)의 도깨비다니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와 라플라스(Laplace) 이래 우연 이론(the theory of chance)은 물리 이론의 문턱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 이론은 클라우시우스, 맥스웰, 볼츠만, 플랑크(Planck), 깁스(Gibbs)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기체 운동이론으로써 (나중에 통계역학으로 발전한다) 물리 이론을 침공했다; 그리고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우연 이론은 사디 카르노(Sadi Carnot)가 세운 열역학 이론을 거의 흡수했다. 열역학과 운동이론의 원래 강령이 (통계역학) 지닌 근본적인 반(反)-파르메니데스적 특징에 대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운동이론은 바로 시작부터, 파르메니데스적 및 반(反)-파르메니데스적 경향 사이의..

남녀의 전설 (수정본)

남녀의 전설 남자 돌아다니고 싶어 했고선험적으로 세포에 각인된 결론이다.선험적이란세월 먹으면서 실패 축적되어어설픈 지혜가 된 과정. 여자 한 곳에 살고 싶어 했고선험적으로 그렇게 사는 것 좋았다.머무름오래 살기 위해서 차단된 곳에서전염병 막아 생명 보전하는 과정. 프로이트냐고?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욕구 순서생명 보존과 생식이고합치면 전설과 신화(神話)의 탄생. 에덴동산 신화선악과 따먹고 추방된 전설은복종만 원하는 원시사회에서프로메테우스여자 만나 신(神)에게 반항했다는유대인과 그리스인이 만든 이야기. 아기처럼 살지 건방지게명령에 불복종하고 불 훔쳐인간에게 지식 전달하니바위에 쇠사슬에 묶여 독수리가 간 쪼아먹고 밤 되면 간 다시 살아나는형벌 받았으니 영웅이지,에덴에서 추방되어 지식으로독립해서 살았으니 전형이다.

습작시 2025.03.04

진리와 추측 사이의 인식론적 대립

진리와 추측 사이의 인식론적 대립 파르메니데스가 진리와 추측(doxα: dokeō) 사이에 인식론적 대립을 설정한 것은 크세노파네스가 설정한 것보다 (B34 및 35) 훨씬 더 엄중하다: 파르메니데스는 추측(doxα)을 참된 믿음과 부단히 대립시켜서 (크세노파네스는 인간이, 비록 알지 못할지라도 우연히 어떤 참된 견해를 지닐지도 모른다고 인정하는 반면) 진리에 따르면, 움직임과 변화 및 다원성의 세계가 불가능하다고 그는 강조하여 선언한다. 그리하여 이 불가능한 세계의 생성이 설명될 때, 그 세계는 오류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명시적으로 기술된다. 내가 느끼기에 그 구절들이 결정적이어서, 이 불가능한 변화의 세계를 ‘내 말의 기만적 요구’로서나 (내가 보기에 올바른 번역인) ‘내 말의 교묘한 요구’로서 (데 ..

비판적 합리주의

비판적 합리주의 내가 비판적 합리주의자의 태도라고 지칭하는 것은, 관념들을 간직하여 그 관념들을 비판적으로 토론하는 태도를 다소 초월한다: 비판적 합리주의자는 자신이 자신의 이론을 결코 증명할 수 없지만, 기껏해야 자신의 경쟁자들의 이론 몇 가지를 논박할 수 있음을 인식한다 (파르메니데스와 달리). 그리하여 비판적 합리주의자는 세계에 관한 이론을 확립하려고 결코 시도하지 않는다: 그는 ‘근거’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경합하는 많은 관념들을 산출하여 그 관념들을 엄격하게 비판한다면, 운이 좋을 경우 우리는 진리에 더 가까이 접근할 것이라고 그는 믿을 ㅡ 내가 믿는 바와 같이 ㅡ 것이다. 이 방식이 추측과 논박의 방식이다; 그것은, 많은 (경합하는) 가설들을 산출함에 의하여, 많은 위험을 무릅쓰는..

실재론과 인간의 가장 창조적 과업

실재론과 인간의 가장 창조적 과업 파르메니데스처럼 나도 실재론자이다: 나는 세계에 관한 문제들과 이론들에 흥미를 느낀다. 비판적 합리주의에 덧붙여 내가 두 번째 믿음을 고백할 것이라면, 그것은 실재론(realism)이다. 그러나 실재론에 대한 나의 믿음과 비판적 합리주의에 대한 나의 믿음은, 집착이 아니라 추측일 뿐인데 왜냐하면 엄정한 비판의 압력을 받는다면 나는 그것들을 포기할 준비가 철저히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재론에 관하여 나는 파르메니데스와 매우 가까움을 느낀다. 이유인즉 내가 실재론을 포기한다면, 나의 흥미에 대한 유일한 이유가 세계에 관하여 중요한 것을 배우려는 나의 욕망이며 이것을 위하여 우리에게 관념들 특히 세계에 관한 이론들이 필요해서 나는 관념들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게 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