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길 꿈을 따라가는 까닭은 외길이어서이다. 의식(意識)의 외피(外皮)를 희롱하는 저편 우주는 눈알을 굴린다. 사각사각 보인다, 들린다? 공간이 수축하여 시간을 잡아먹어 버리고 꿈은 조각이 나며 불씨가 되어 흩어졌다. 긴 침묵이 흐르고 꿈이 태어난다면 길을 따라 걷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습작시 2010.08.01
지리산 지리산이 걸어오다가 경망스런 늙은이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서버렸다고 노래하면 얼마나 기다려야 산은 다시 움직이는가? 숨을 죽이고 기다리느니 능선을 타다가 녹아내리는 생명이 되리. 소리치는 자와 노래하는 시인은 골짜기에서 서로 입을 열고 바람을 타고 오른다. 습작시 2010.08.01
양지와 어둠 햇빛이 숨은 밤 뒤척거리다 달마저 지나가고 시간에 부대끼는데 홀로 있다. 양지에 살았지만 어둠에 머무르면서 육체가 숨을 쉰다. 빛과 어둠이 오가는 시간, 기대하는 것만 남고 그리움은 색이 바랬다. 습작시 2010.08.01
신두리 모래언덕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 모래가루가 포구에 날아와 산을 만들고 식물이 뿌리를 내렸다. 바다에서 스멀거리던 게와 조개가 소금물에서 기어 나와 육지를 탐험하던 시간은 땅에서 불꽃으로 타올랐다. 사랑을 모른다면, 생명을 팽개친다면 해안을 두드리는 파도와 지평선 넘어 지는 해는 무엇 때문인가? .. 습작시 2010.08.01
모든 것을 주고 당신이 몸을 던져 세상을 뜬 후 국화 한 송이도 놓지 않았고 엎드려 절도 하지 않았소. 움직이지 않는 자에게 보화와 향기가 무슨 소용이며 되돌아온 명성이 무엇이란 말인가? 고인(故人)을 추하게 하는 일보다 타매하던 내 몸을 뒤돌아보면서 원칙이라는 핑계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유토피아로 가는 .. 습작시 2010.08.01
울지 말라 울지 말라 슬프더라도, 눈물이 흐르더라도 소리를 내지 말라. 검은 장막 뒤로 가는 길은 누가 막고 누가 피하던가? 앞서거니 뒤따르거니 태어난 자는 사라지고 아름답던 기억만 남는 까닭은 짧은 세월에서 녹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갔다, 저 장막너머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라도 하듯. 남은 자들의 .. 습작시 2010.08.01
명품족인가? 만이천원짜리 청바지를 사서 입다가 바랜 색깔이 마음에 들어 만구천원짜리 두 번째 청바지를 샀다. 평생 옷을 살 줄 몰라서 아내가 사서 입히는 옷이 다수였는데 한국전쟁 중에 태어나서 기억 속에는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편집광처럼 도사리고 있다. 3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자책감 때문인지 피.. 습작시 2010.08.01
주검으로 돌아온 분에게 얼음은 녹아서 물이 되고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기에, 밤이 지나서 낮이 오기에 죽음과 삶은 하나라고 헤라클리투스는 주장했다. 친구로 권좌에 올라 멀어졌던 분이 오늘 아침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음과 삶이 자연이라며 남긴 유서를 이해하려면 혁명을 할 수는 없었다고, 그럴 시절이 아니었다고 말.. 습작시 2010.08.01
최후 최후의 심판이 온다고, 반드시 닥친다고 말하지만 세상의 끝에서 뒤돌아보면 순간마다 심판이리라.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경계선에서 당신은 배회하지 않을까, 울다 지쳐 영혼조차 무색해지고 홀로 남은 자의 외로움은 차라리 사라짐만 못하지 않을까? 두려움을 잊고자 취해 살며 희희낙락거리고 돌.. 습작시 2010.08.01
오월의 아카시아 봄이 오기 전 호흡부전으로 세상을 뜬 아비의 몸을 불태우고 2시간만에 나온 뼈를 빻아 벽제 화장터 옆에 뿌렸다. 혈육이 사망하기 전까지 매일 출퇴근길에서 얼마나 피해 다녔던가! 살점과 뼈가 고온에 녹아내려 마침내 바스러지는 곳이라니, 혐오시설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곳을 요리조리 돌아다녔다.. 습작시 2010.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