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415

더 좋은 세상을 찾아서, II부 역사에 관하여, 11장 여론과 자유주의적 원칙들

11 여론과 자유주의적 원칙들 다음 언급들에는 자유주의자들의 (그 용어의 영어 의미에서) 어느 국제회의에서 토론을 위한 재료를 제공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나의 목적은 단지 훌륭한 일반적인 토론을 위하여 토대들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나의 청중에게서 자유주의적인 견해들을 내가 상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견해들에 대한 호의적인 대중적인 상정들을 지지하기보다는 도전에 주로 관심을 가졌다. 1. 여론이라는 신화 우리는, 흔히 무비판적으로 용납되는 ‘여론’에 관한 몇 가지 신화들을 경계해야 한다. 먼저 대중의 목소리는 신(神)의 목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고전적인 신화가 있는데 그 신화는, 대중의 목소리에, 일종의 최종적인 권위와 무제한적인 지혜를 부여한다. 현대에 그 신화의 등가물은,..

더 좋은 세상을 찾아서, II부 역사에 관하여, 10장 지식을 통한 해방

10 지식을 통한 해방 이마누엘 칸트의 철학은, 그의 역사철학과 함께, 독일에서 낡은 것으로서 그리고 헤겔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대체된 것으로서 흔히 간주된다. 이것은, 독일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 칸트의 우월한 지성적 및 도덕적 위상에a 기인할 확률이 높다; 이유인즉 그의 업적의 바로 그 위대성이 그의 하찮은 후배들을 괴롭히는 존재여서 피히테와 나중에는 헤겔이, 세상 사람들에게 칸트가 자신들의 선두주자들 중 한 명일뿐이라고 설득함에 의하여 이 괴로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반대로 칸트는 낭만파 운동 전체를 그리고 특히 피히테를 확고하게 반대했다: 칸트는 사실상 저렇게 매도당한 운동인 계몽사조의 마지막 위대한 지지자였다. ‘계몽사조란 무엇인가?’라는 ..

더 좋은 세상을 찾아서, II부 역사에 관하여, 9장 이마누엘 칸트: 계몽주의 철학자

9 이마누엘 칸트: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 사망 150주년을 추념하는 강좌 150년 전 프러시아의 지방 마을인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에서 80세 생애를 보내고, 이마누엘 칸트가 사망했다. 여러 해 동안 그의 은퇴가 완료되었고 그의 친구들은 조용한 장례식을 계획했다. 그러나 어느 기술자의 이 아들은 왕처럼 매장되었다. 그의 사망 소문이 마을을 통하여 퍼졌을 때 사람들은 그를 보겠다고 그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장례식 날 그 마을의 삶은 멈추었다. 모든 교회들 종이 울리는 가운데 관에는 수 천 명이 뒤따랐다.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이와 같은 일은 이전에 발생한 적이 없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대중의 감정이 이렇게 놀랍게 고조된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위대한 철학자로서 그리고 훌륭한 사람으로서 ..

서양문명의 본질

서양문명의 본질 우리의 문명은 본질적으로 지중해 문명인데 그리스인들로부터 유래한다. 이 문명은, 기원전 6세기에서 4세기까지 태어났고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아테네의 기적은 어마어마하다. 여기서 우리는 기원전 600년경에 솔론(Solon)으로 시작하여 짧은 기간에 몇 가지 평화로운 정치적 혁명들을 경험한다. 착취당하는 아테네 시민들로부터 부채를 탕감함에 의하여 그리고 아테네 시민이 자신의 부채 때문에 노예가 될 수 있음을 금지함에 의하여 솔론은 아테네를 구했다. 그것은 시민들의 자유를 보전하려고 고안된 최초의 헌법이었으며, 자유는 확보되는 것이 없고 항상 위협을 받음을 아테네의 역사가 충분히 분명하게 밝힐지라도 그것은 잊힌 적이 없다c. 솔론은 위대한 정치가만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아..

더 좋은 세상을 찾아서, II부 역사에 관하여, 8장 문화 충돌에 관하여

8 문화 충돌에 관하여 비엔나에 초대되어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나는 매우 기쁘다; 그리고 나는, 오스트리아 해외동포 협회의 회장에 의하여 오늘 여기에서 짧은 강좌를 제공해달라고 초청받은 것을 커다란 영예로서 느꼈다. 그의 초청장은, 나의 강좌 제목은 나에게 맡겨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매우 친절하게도 선택을 해야 하는 모든 고민들을 나에게 맡겼다. 결정하는 데서의 난관들은 상당했다. 분명히 나는 나에게 흥미로운 주제를 선택하기를 원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점령을 끝낸 독특한 사건인 현재의 행사에 ㅡ 오스트리아 국가 조약(the Austrian State Treaty) 25주년, 비엔나에서 오스트리아 해외동포들의 모임에 ㅡ..

더 좋은 세상을 찾아서, II부 역사에 관하여, 7장 저서와 사상

II 부 역사에 관하여 7 저서와 사상 최초 유럽 출간 저서들에 관하여 강의를 해달라는 초청을 받아서 나는 기쁘다. 이것은, 저서들과 그리하여 장서들이 우리의 유럽 문명에서 그리고 아마도 인류 문명 전체에서 가장 특징적이고 가장 중요한 물리적 물체들이기 때문뿐만 아니라 나의 생애에서 저서들이 발휘한 ㅡ 그리고 여전히 발휘하는 ㅡ 지배적인 역할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다섯 살이었을 때 셀마 라게를뢰프(Selma Lagerlöf)의 닐스의 신나는 모험(The Wonderful Adventures of Nils: Wunderbare Reise des klein Nils Holgersson mit den Wildgänsen)의 1권이 읽혀서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 작품은 세 권이 녹색 책들로 막 출간되었다. 어..

더 좋은 세상을 찾아서, 1부 지식에 관하여, 6장 허풍에 반대하여

6 허풍에 반대하여 (원래 출간의 의도가 없었던 서한) 서언. 약 14년 전 나는 클라우스 그로스너(Klaus Grossner) 씨로부터 서한 한 통을 받았는데 그에 대하여 나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나의 친구인 한스 알베르트(Hans Albert)를 언급했고 (독일) 철학의 상태에 관한 서면 면담을 나에게 요청했다. 나는 그의 서한에 많이 동의했고, 내가 그 서한의 몇몇 부분들에 동의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서한에 토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얼마간 유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질문들에 답변했다. 이어지는 서한에서 그로스너 씨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던 저서에서 여기 아래에 인쇄된 서한의 부분들을 출간할 허락을 나에게 요청했다. 추가적인 의심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세상을 찾아서, 1부 지식에 관하여, 5장 사회과학의 논리

5 사회과학의 논리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무지 사이의 대비를 표현하는 두 가지 논지들로써 사회과학의 논리에 관한 나의 논문을 시작하겠다고 나는 제안한다. 첫 번째 논지: 우리에게는 적당한 양의 지식이 있다. 게다가 결정되지 않은 지성적으로 흥미로운 세부사항들뿐만 아니라, 더욱 특히 상당히 실용적인 중요성을 띠기도 하고 게다가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심오한 이론적 통찰과 놀라울 정도의 이해를 제공할 사물들을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두 번째 논지: 우리의 무지는 끝이 없어서 우리를 사색하게 만든다. 정말로 심지어 자연과학 자체의 분야에서도 우리의 무지를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은 정확하게 이 자연과학의 압도적인 진보 (나의 첫 번째 논지가 언급하는)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무지라는 소크라테스적 개념..

더 좋은 세상을 찾아서, 1부 지식에 관하여 4장 과학과 비판

4 과학과 비판 알파크 토론회(Alpbach Forum)의 옛 회원으로서 그 토론회의 30주년 축하식에 초대를 받아서 나는 기쁘다; 그러나 나는 이 초대를 다소 망설인 후에 수락했을 따름이다. ‘과거 30년에 걸친 지성적 및 과학적 발전’이라는 극도로 폭넓은 기본적인 주제에 관하여 단지 30분에 합당하고 이해 가능한 것을 말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실상 나의 계산이 옳다면, 이것으로 인하여 나에게는 지성적 및 과학적 발전 매년에 대하여 정확하게 1분이 나에게 주어진다. 그래서 나는 사과의 말로써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고 더 이상의 소동을 일으키지 말고 시작해야겠다. I 내가 선택한 제목, ‘과학과 비판’으로부터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지성적 발전이라는..

더 좋은 세상을 찾아서, 1부 지식에 관하여, 3장 소위 지식의 근원에 관하여

3 소위 지식의 근원에 관하여 귀 대학의 인문학부에서 나에게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커다란 명예에 감사한다. 나는 이 명예에 깊이 감사하며, 그 명예를 아주 즐겁게 받아들인다. 나는 매우 짧은 기간의 통보를 받고 어려운 과제를 떠맡았는데 즉, 짧은 강연을 수행하는 과제다. 그러나 이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나의 뉴질랜드 시절에서 유래하는 사실인 이야기를 여러분에 알려주고 싶다. 뉴질랜드, 크라이스처치(Christchurch)에서 나는 물리학자인 콜러리지 파(Coleridge Farr) 교수와 친했는데 그는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대략 지금 나의 나이였다. 그는 재치가 있고 즐거움을 주는 분이었는데 런던의 왕립협회 회원이었다. 파 교수는 공공의 복리를 중시하는 사람이어서, 다른 것들 가운데서 감옥을 포함..